고광석 목사(광주서광교회)

믿음의 눈을 들어 풍랑 잠잠케 하실 주님 바라봅시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막 5:39)

고광석 목사(광주서광교회)
고광석 목사(광주서광교회)

제가 만난 국내외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을 잘 하는데도 왜 고난이 생기는가?”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질문이 있습니까?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마치시고 하루해가 저물어 가는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갈릴리 호수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배들도 함께 운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들이 호수를 건너는 중 갑자기 광풍이 불어 예수님이 탄 배에 물이 가득하게 들어와 침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당황한 제자들이 곤히 주무시고 계시던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함으로 풍랑을 잠잠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풍랑을 만난 그 배에 제자들만 승선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함께 타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풍랑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탄 배에만 불어 닥쳤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에도 침몰할 정도로 강하게 불어 닥쳤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잘 믿는 우리들에게도 언제든지 풍랑이 불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 잘 믿으면 환란이나 위험이 아예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합니다. 심지어는 불신자들이 “예수 믿는데 왜 그런 어려움이 찾아오느냐”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 잘 믿는 사람들도 인생의 풍랑을 만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타고 계신 배에도 광풍이 불어 닥쳤는데, 하물며 우리라고 예외일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불어 닥친 광풍들 중에는 건강을 앗아가는 광풍, 재물을 빼앗아 가는 광풍, 사랑하는 가족을 힘들게 하는 광풍, 명예를 앗아가는 광풍, 심지어 신앙생활을 뒤흔드는 광풍 등이 있습니다. 요즘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광풍이 우리의 일상과 삶을 침몰시키기 직전에 있습니다. 이런 풍랑들은 자신이 잘못해서 그 대가로 닥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음에도 광풍이 불어 닥칠 때가 있습니다.

구약의 욥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욥은 당대 의인이었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인생에 큰 광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자녀들이 다 죽고, 그 많던 재물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건강까지 앗아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 떠나고 완전히 패가망신했습니다. 심지어 부인까지도 하나님을 원망하라고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믿음으로 그에게 임한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했습니다. 욥은 욥기 23장 10절에서,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고백함으로 그에게 닥친 풍랑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신약의 나사로와 그의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남매는 일찍부모님을 여의고 나사로가 가장 역할을 하던 가정이었습니다. 나사로 남매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에는 항상 나사로의 집에서 묶을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에서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기록함으로, 예수님과 나사로 남매와의 특별한 관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정에 예기치 않은 큰 풍랑이 닥쳤습니다. 가장 역할을 하던 나사로가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말기 암에 걸려서 백약이 무효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나사로가 그 병 때문에 죽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살려주셨지만,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고 변함없이 예수님을 섬겼던 나사로가 이런 인생의 광풍을 만났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욥이나 나사로의 경우를 보니,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에게도 풍랑이 닥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예기치 않는 풍랑이 닥칠 수 있는데, 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제자들처럼 두려움 속에서 “죽겠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까?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은 없습니까?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예수님을 잘 믿어왔고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배에 타고 있는데 왜 이런 고난이 닥치느냐고 분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광풍 앞에 주님이 찾으셨던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풍으로 인해 허둥대고 “죽게 되었다”고 소리치던 제자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질책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전능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보신 것은 ‘광풍’이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 지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풍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큰 두려움에 빠졌고, 죽을 것만 같은 공포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있는 광풍을 바라보면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광풍을 보면 나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풍랑이 더 큽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더 큽니까? 예수님은 풍랑보다 더 큰 분이심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풍랑보다 더 크신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인생에 문제가 생길 때, 문제 자체에 매몰되지 말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승리하기 바랍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열두 명의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정탐꾼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그 땅을 보았지만, 나머지 열 명은 불신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 안에 있었으면서도 풍랑 앞에서 믿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40절). 성경에는 믿음이 많은 자, 믿음이 적은 자, 믿음이 없는 자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자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풍랑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보니 입에서 “죽겠다”는 말이 나왔던 것입니다(38절). 불신자들은 예기치 않은 광풍이 닥치면 “죽겠다”고 말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께 있다”고 해야 합니다. “죽겠다”와 “주께 있다”를 빨리 하면 같은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죽겠다”는 말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주께 있다”는 말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죽음의 풍랑 앞에서도 이 문제의 해결책은 “주께 있다”고 담대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풍랑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 풍랑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풍랑이 시험이 되고 축복의 수단이 됩니다. 우리에게 닥친 풍랑은 욥처럼 우리를 단련하신 후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광풍이 불어 닥칠 때 절대로 두려워하거나 “죽겠다”고 하지 말고, “주께 있다”고 고백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코로나19 광풍이 1년 가까이 우리들에게 불어 닥치고 있습니다. 너무 큰 풍랑이어서 많은 이들이 큰 피해를 받고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풍랑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참된 믿음은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풍랑을 잠잠케 하실 주님을 손길을 바라보며 코로나19 풍랑에 맞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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