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외교수장의 이름을 딴 ‘가쓰라-데프트 조약’은 우리가 일본에 짓밟히는 발판이 되었다. 이에 더해 일본의 패망이 눈에 보이던 1945년 2월 미·영·소 3국의 얄타회담으로 한반도의 지도에 그어진 38선은 오늘의 분단을 고착화하고 말았다. 이어서 미국 국무장관 에치슨이 발표한 소위 ‘에치슨라인’은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만들고 말았다.

이렇게 근대사에서 우리나라는 자주적으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정세나 정권에 의해 한반도가 늘 흔들렸던 역사를 보게 되어 더욱 가슴 저려온다. 그런 의미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자랑스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소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와 고구려는 우리 땅이었고, 우리나라였으며, 우리 민족이었다. 외세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에 아픔을 주고 특정지역의 이익만 챙긴 셈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은 지금도 동북아공정 등으로 역사왜곡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대한 간섭과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이렇게 늘 아픔을 강요했다. 아직도 우리가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 등에 둘러싸여 주권국으로서 자주적 선택을 제한받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총신대학교의 임시이사 체제를 마무리하고 정이사체제로 전환한 것은 일제강점기를 끝내는 것 같은 기쁨이다. 그러기에 이제 내부의 반목과 갈등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다시는 외부의 힘을 우리 안에 끌어들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외부의 힘으로 학교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우리들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역할을 했다면 당분간 조용히 지켜보면서 자숙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치우치는 것은 다른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정말 학교와 교단의 미래만을 위해 매우 중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가치를 가진 인사들이 학교를 미래지향적으로, 그리고 교단을 건강하게 세워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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