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파리에 가면 누구나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소장품의 양와 질 모두에서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리스 최고의 조각상 <비너스>는 그 곳에 가야 볼 수 있다.

그런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그 건물은 바로 루브르 궁전을 개조한 것이다. 루브르 궁전은 12세기 후반, 필립 2세에 의해 요새로 착공되었으며 수차례 확장을 통해 궁전이 되었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주하면서 루브르는 왕실의 수집품 전시 공간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대혁명 시기, 국민회의는 루브르를 박물관으로 공식 선포했다. 그리고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며 현재의 박물관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전시품은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된 수집품들이었다.

궁전이 박물관으로 바뀌고 누구나 드나들며 예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이 신분사회를 시민사회로 바꾼 역사적 사건일진대, 제한된 사람들만 드나들던 왕궁이 누구에게나 열린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유로운 특수계층만 즐기던 예술세계도 신분이 아닌 취향에 의해 선택 가능한 영역이 된 것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거대한 에르미타주 박물관도 그렇다. 루브르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힐 정도인 에르미타주 박물관 역시 러시아 제국의 겨울 궁전이었다.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 덕수궁 석조전도 현대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세상은 변해왔다. 사람 중심으로 발전된 것이다. 왕 한 사람을 위해 백성이 존재하던 체제는 붕괴되고,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쉽고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근대에 와서야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신분사회 같은 차별이 보이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내부에서도 은근한 차별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사람 사이의 벽을 깨기 위해 오신 주님을 믿는 우리는 학력, 재력, 권력 등에 의한 차별을 거둬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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