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시국은 전운(戰雲)을 방불케 하는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다. 지난 12월부터 시작된 송년의 시간은 이미 멈춰선 지 오래되었고, 송구영신의 덕담도 사라져 버렸다. 질서가 무너지고, 가치는 혼돈에 빠지고, 정의는 오염되어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만큼 모든 것이 난맥(亂脈)이다. 새해에는 더 나아질 것이란 막연한 희망을 가져보지만 두려움, 쓸쓸함은 지울 수가 없다. 간악한 권신(權臣)들이 날뛰고, 현자(賢者)들은 보기도 드물고, 우자(愚者)들이 나서서 활보하는 세상이 되었다. 더 큰 염려는 그들이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모든 것이 내 것인 양 제멋대로 취하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올해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이다. 나와 내 편이 하는 것은 무조건 옳으며, 남과 반대편이 하는 것은 무조건 틀리다는 사고방식이다. 쉽게 말해 내로남불이라는 뜻이다. 결국 협치를 한다면서 입으로만 공의를 말하고, 자신의 들보는 보지도 않으려는 우격다짐의 현상이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운 것을 모른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올해가 가기 전에 새겨들을 말이다.

이런 세상이 되면 결코 안 된다. 이미 한국사회는 정의와 공의의 개념이 무너졌다. 한국교계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와 같은 반성은 한국교회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로 정부와 크고 작은 마찰이 계속되었다. 어찌됐든 이런 상황은 부정적인 여론으로 작용해 지금도 강력한 교회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를 놓고도 아직도 신학적 논쟁이 한창이다. 지역에서는 교회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내부갈등은 여전하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좀 더 존중할 때 갈등의 요소는 해소되는 법이다. 여러 가지 우울한 ‘중증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논한다면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함께 가자’는 역동적 열망으로 나가야 한다. 지금은 고도의 정치적 셈법보다 상대방을 위한 순금의 기도가 필요한 때다.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로 송년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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