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일어났다. 더욱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교회 발 감염도 또다시 일어났다. 물론 대부분의 교회들은 방역수칙을 잘 지킬 것이다. 언제나 소수가 문제이긴 한다. 하지만 그러한 변명이 통하리라고 기대하기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쳐있고 상황은 급박하다. 방역 수칙의 적용에서 현실적으로 모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많은 교회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뿐더러 정책의 세심함과 일관성을 지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유독 교회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라는 항변은 세상에 옹색하게 들릴 것이다. 대유행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은 교회의 존립 뿐 아니라 선교적 전망까지 유념해야 할 사안이다.

올해 발표된 조사들은 교회에 우호적이지 않다. 엠브레인에서 지난 6월에 행한 ‘종교와 종교인 관련 인식 조사’를 보면, 종교에 대한 문제점으로 꼽은 이유가 1위는 종교의 부정부패(64.6%)이며, 2위는 종교계의 집단이기주의(54.9%)이다. 구체적으로 천주교, 불교, 기독교 각각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는 기독교 쪽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편중되고 있다. 불교는 절제, 온화, 자기관리, 천주교는 가족적, 착한, 원리적, 믿을 수 있는 등의 이미지들이 나온 반면, 기독교(개신교)에는 배타적, 비합리적, 독선적, 부패한, 배려 없는 등의 이미지들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앞서 나온 종교에 대한 부정부패와 집단이기주의 같은 부정적 인식은 주로 기독교를 향한 것일 개연성이 높다.

물론 세상여론이 기독교의 지침은 아니다. 어떠한 적대적인 상황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는 과제는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지는 순교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교회 주변의 비호감적인 분위기는 황제숭배와 잔인하고 쾌락적인 로마제국의 문화에 저항함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았던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르다. 비록 소수의 문제라 할지라도 공교회적 책임을 인정하고 자성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기독교는 초대교회와 같은 미약한 소수종교도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우려는 더욱 크다. 한국 현대사에서 기독교 교세가 쇠퇴한 때는 모두 교회의 공신력이 그 영향력에 비례하지 못할 때였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때(1940~1945),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정권의 요직을 맡았으나 부정부패가 극심했던 1공화국 말기(1955~1963)에 교세는 가장 크게 하락했다.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본질적 역량을 다시 보게 한다. 초대교회에서 역병의 대유행은 교회의 진가가 발휘되는 시기가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족들이 내버린 병자들을 돌보고 시신들을 수습해주었다. 당시 교회를 향한 박해와 적의는 오늘날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럼에도 한 이교도 시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저들이 믿는 바는 허황되나 저들의 행실은 우리가 이상으로 여기는 바에 부합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의 위기는 세상을 향한 교회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선교적 재정비의 시기이기도 하다. 

신명기 30장 19절은 “너희와 너희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명령한다. 생명을 위한 헌신과 협력은 지금 교회에게 필요한 선교적 선택이다. 코로나19의 어둡고 긴 터널에서 희미한 불빛을 모두가 바라보는 지금, 교회는 피해자가 아닌 고통의 동반자로서 이 시기를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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