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고맙습니다! 우리의 영웅] 기꺼이 올라탄 대구행 KTX, 사투현장서 더 큰 감사 얻었다
[성탄특집/ 고맙습니다! 우리의 영웅] 기꺼이 올라탄 대구행 KTX, 사투현장서 더 큰 감사 얻었다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 선 도화영 간호사
  • 송상원 기자
  • 승인 2020.12.22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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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1년을 보냈다. 연초부터 끊임없이 확산된 코로나19는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일상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역대 최장기간 이어진 장마로 발생한 수천명의 이재민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처럼 2020년은 잔인했다.
하지만 시련 속에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 있다. 역병과 수해로 지쳐 쓰러져갈 때 우리 곁으로 다가와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일으켜준 영웅과 형제가 바로 그들이다.
본지는 한 해를 마감하며 ‘고맙습니다! 우리의 영웅’과 ‘고맙습니다! 우리의 형제’ 특집을 마련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우리의 영웅 도화영 간호사(거룩한빛비전교회/강동경희대병원)다.
도화영 간호사는 신천지발 코로나19가 대구·경북지역을 뒤덮었을 때 현장으로 내려가 1차 대유행을 종식시킨 백의천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라며 자원하여 방역현장에 뛰어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가운을 벗고 방호복을 입은 백의의 천사 도화영 간호사. 도 간호사는 필리핀에서 의료선교봉사를 하던 중 대구경북 지역에서 신천지 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설임 없이 대구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도 간호사는 3월 26일부터 저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와 싸웠다. 코로나19로 쓰러진 환자들을 치료하고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도 간호사는 “저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가운을 벗고 방호복을 입은 백의의 천사 도화영 간호사. 도 간호사는 필리핀에서 의료선교봉사를 하던 중 대구경북 지역에서 신천지 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설임 없이 대구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도 간호사는 3월 26일부터 저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와 싸웠다. 코로나19로 쓰러진 환자들을 치료하고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도 간호사는 “저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화영 씨의 새해 목표는 단연코 선교였다. 선교 여정을 위해 잠시 간호사 업무도 내려놓은 터였다. 지난해 교회에서 선교훈련을 받은 후 올해 1월 4일, 홀로 필리핀 선교현장으로 떠났다.

처음 한 달 반 동안 세부에서 보건교사로 봉사한 데 이어, 교회 파송선교사가 사역하는 두마게테로 향했다. 두마게테에서 머문 지 2주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닐라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다. 고국 또한 신천지발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구·경북지역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필리핀에 더 머물렀다간 귀국길이 막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화영 씨는 선교 일정을 변경해 2월 25일 급히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으로 오는 기내에서도 화영 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 걱정이 앞섰고, 대구·경북지역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미 필리핀에 있을 당시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로부터 지원 요청 메일을 받은 화영 씨는 파견에 응하기로 결정했다.

귀국한 이후 줄곧 방역 현장으로 갈 채비를 마치고 파견 통보를 기다렸다. 잠시 파트타임으로 일할 때도 병원 측에 “언제든지 대구로 갈 수 있다”고 얘기를 해놓았다.
그러던 3월 25일 드디어 연락이 왔다. “대구동산병원을 지원해주세요!”

망설임 없이 올라탄 대구행 KTX
단 한 순간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음날인 3월 26일 새벽, 화영 씨는 대구행 KTX에 몸을 실었다.
“망설일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어요. 앞서 필리핀 선교지를 혼자 갈 때 살짝 두려웠지만 그때부터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다른 마음보다 하나님이 저를 간호사로 세우셨다는 사명감이 더 컸어요. 무엇보다 방역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처럼 당찼던 화영 씨도 거룩한빛비전교회 성도들과 지인들에게 기도편지를 쓸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렀다. 그녀는 기도편지에 “기도 요청합니다. 감염되지 않고 있는 동안 몸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까지 헌신하고 돌아올 수 있게, 제가 환자를 간호하는 모든 걸음을 주님이 인도하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띄웠다.

그러자 성도들과 지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는 코로나19에 맞서 앞장서는 모습이 대단하다’, ‘이렇게 대담하고 용감한 아이인 줄 몰랐다’면서, 함께 기도하겠다는 응원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구행 기차에서 기도편지를 보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눈물을 흘리며 정말 잘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친구들 덕분에 큰 힘을 얻은 채 대구에 도착할 수 있었죠.”

밀려드는 환자, 반복되는 사투

도화영 간호사는 대구동산병원에 자원하면서 자신에게 2가지 사명을 부여했다. 의료인으로서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는 사명,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으로 환자들의 영혼까지 보살피는 소명이다. 도 간호사가 코로나19 집중치료를 받는 환자 곁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도화영 간호사는 대구동산병원에 자원하면서 자신에게 2가지 사명을 부여했다. 의료인으로서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는 사명,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으로 환자들의 영혼까지 보살피는 소명이다. 도 간호사가 코로나19 집중치료를 받는 환자 곁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대구는 죽은 도시 같았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이 10명을 넘지 않았고, 동대구역 앞에는 손님을 찾지 못한 택시만 줄지어 서있었다. 평상시라면 인파로 북적거릴 서문시장의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병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더구나 대구동산병원은 최전선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감염병 전담병원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확진자로 의료진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 화영 씨도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곧바로 3교대 업무에 투입됐다.

방역 현장의 의료진을 힘들게 한 것은 무엇보다 방호복이었다. 방호복 착용 후 두 시간이 지나면 탈수증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환자를 부축만 해도 땀이 났고 더구나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일을 했다. 방호복을 벗으면 땀이 한 바가지가 나왔다. 그렇게 두 시간 일하고 두 시간 쉬는 격무의 연속. 숙소로 들어가면 녹초가 돼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때 생각하면, 아 정말 힘들었어요. 이전엔 느끼지 못한 노동의 강도라고 할까요. 긴장이 되니 피곤이 더 빨리 밀려왔지만, 두 시간 쉬고 다시 병동에 투입돼 새우잠을 자곤 했어요.”

하지만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려보자며 의기투합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아울러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들자 없던 힘이 생기곤 했다.

“역경 속에서도 함께 한 선생님들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서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며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죠. 특히 김추자 선생님이 기억에 남아요. 이모뻘 간호사님인데 암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한 분입니다. 정말 존경스러웠고 큰 도전이 됐어요.”

기도와 마스크로 나눈 그리스도 사랑

도 간호사는 3월 26일부터 5월 4일까지 대구 지역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사역했다.
도 간호사는 3월 26일부터 5월 4일까지 대구 지역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사역했다.

화영 씨는 환자 돌봄과 더불어 병동 안팎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때만 해도 물량 부족으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비싸기까지 했다. 화영 씨 병원과 숙소를 오가는 출퇴근길에서 마스크를 나누며 복음을 전했다.

병동에서는 예수님을 섬기듯 환자들을 섬겼다. 환자들은 병상이 빼곡히 채워지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격리 공간에서 우울증을 겪는 환자도 적지 않았고, 때로는 우울증약을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화영 씨는 위로가 필요한 그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중 중환자실에 있던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힘겨워하는 그를 보며 기도를 드렸다. 아울러 그에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얘기하며 주님을 영접할 것을 권했다. 의사소통마저 쉽지 않았던 학생이었지만, 간절함이 통했다. 화영 씨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기도하는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대입 수험생 시절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영접기도를 드렸어요. 제 기도 덕분이었을까요. 평생을 불자로 살았던 할아버지가 아멘하면서 돌아가셨어요. 그 순간을 기억하며 고통 속에 있는 환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넘치는 감사

현재 도 간호사는 의료선교의 비전을 키우며 의료인과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감당하고 있다.
현재 도 간호사는 의료선교의 비전을 키우며 의료인과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감당하고 있다.

많은 때는 741명에 달했던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4월 중순부터 한 자릿수에 머물더니, 4월 30일과 5월 1일 연속 0명을 기록했다. 비로소 코로나19 1차 대유행을 잡아낸 것이다.

5월 4일 그리운 집으로 복귀하는 길, 화영 씨는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고군분투 끝에 대구·경북의 코로나19를 진정시킨 의료진의 일원이었다는 것도 자랑스러웠지만, 그보단 하나님을 향한 감사함이 앞섰다.

“돌이켜보면 필리핀 선교현장도 대구 방역현장도 하나님이 인도하신대로 갔던 것 같아요. 특히 대구에서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일을 하시는 게 신기했고, 하나님이 저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이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버팀목이 됐던 부모님과 거룩한빛비전교회 김의경 목사 및 성도들, 그리고 그녀 주변에서 기도해줬던 이들에 대한 감사함이 넘쳤다.

“부모님은 대구를 간다고 했을 때 반대하셨고 대구에 있는 동안에 항상 걱정해 주셨어요. 전화기를 잡고 엄마와 많이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엄마는 물론이고 무뚝뚝한 아빠마저 저를 자랑스러워했어요. 또한 목사님과 성도님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에게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해요.”

“지금 더 기도하고 더 예배할 때”
현재 화영 씨는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에서 근무 중이다. 산부인과를 택한 까닭도 향후 선교지에서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보살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더욱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추세를 보며 화영 씨도 걱정이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됐지만, 며칠 째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기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기도하고 더 예배해야 한다는 게 화영 씨의 조언이다.

“현장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한국교회 성도들이 예배자로서 어디에서든지 더 기도하고 더 예배할 때라고 봐요. 고난 중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는 저희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코로나19를 종식시켜 주실 것입니다.”

끝으로 화영 씨는 방역 현장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과 국민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힘든 시기가 닥쳐왔지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때 더욱 빛나는 의료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은다면 지금의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형제 아픔 나누며 헌신한 영웅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대구동산병원 간호부를 위해 물품을 전달한 산정현교회.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한창인 지금도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만, 지난 2월 대구에서 촉발된 1차 대유행 때의 공포보단 덜해 보인다. 지금이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존재와 증상, 치료법, 나아가 백신까지 개발된 터라 어느 정도 정서적 내성이 생겼지만, 당시는 그야말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으로 인한 공포감이 온 나라를 덮었다.

많게는 하루 확진자가 900명에 육박할 정도로 긴박했던 시기, 대구시민 보호를 위해 민간의료시설인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이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을 자처했다. 대구동산병원은 기존 입원환자 136명을 대구 성서에 위치한 동산병원을 비롯해 타병원으로 전원시키고, 2월 21일부터 병원 전체를 감염병 치료를 위한 전담병원으로 전환시켰다.

대구동산병원은 6월말까지 총 1058명의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했다. 올 5월 12일 기준으로 대구지역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 사망률이 가장 낮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때문에 대구동산병원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지만, 지난 5월말에 120억원 대의 경제적 손실을 볼 정도로 희생이 컸다. 의료진들의 희생 역시 컸다. 1000명이 넘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오랜 장갑 착용 때문에 손바닥에 피부병이 생긴 수간호사, 극도의 피로감과 감염공포로 공황장애에 걸린 20대 간호사, 1개월 넘게 의료봉사 후 과로로 쓰러진 자원봉사 의사 등. 코로나19로 사투를 벌이는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한 의료진들이 있었기에 대구가 코로나19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손해와 희생을 예상하고도 시민의 건강을 위해 기꺼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내 준 대구동산병원이야말로 코로나19 시기의 영웅이 아닐 수 없다.

복음전파를 위해 121년 전 제중원으로 출발한 병원의 정체성이 화석화되지 않고, 코로나19 정국에서도 설립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해준 대구동산병원의 헌신은 그래서 더 값지다.

교회 임대료 지원 캠페인

총회교회자립개발원이 미래자립교회 임대료 지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올해 3월 초 <기독신문>과 교회자립개발원이 공동으로 진행한 코로나19 방역과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래자립교회의 고통분담을 위해 벌인 ‘임대료 지원 캠페인’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전국의 대다수 교회들이 예배당 시설 이용 중단과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며 미증유의 감염 확산 방지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인적·물적 여건이 열악한 미래자립교회는 방역은 물론 교인 관리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임대교회의 경우 매월 납부해야 할 월세 또는 대출금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기독신문>과 교회자립개발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미래자립교회에 보다 현실적이고, 단기간 안정시키는 방법이 임대료 지원이라 판단하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여기에 산정현교회(김관선 목사)가 마중물 역할을 해 주었고, 이후 교단을 초월해 캠페인 동참이 줄을 이었다.

임대료 지원 캠페인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적용하지 않은 창의적인 방식이었고, 지원방법 역시 모금이 아닌 후원교회가 후원할 교회에 직접 도움을 주는 방식이었다. 미래자립교회를 위한 임대료 지원 캠페인은 무엇보다 개교회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에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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