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코로나19 대응 2.5단계는 ‘멈춤’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교회는 더욱 힘들어졌다. 소위 ‘비대면예배’를 강요받고 있다. 28일까지 유지된다니 성탄절 예배조차 힘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예배를 비롯한 교회됨을 드러낼 그 어떤 것도 결코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예배했으며 더 진지한 그 태도도 확인했다.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워도 여전히 교회다웠다.

이런 상황에서 맞는 성탄절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 어떨까? 
코로나19로 인해 파티 등의 모임을 절제시키는 분위기에서 성탄절을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극대화하고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전화위복이 아니겠는가?

성탄절은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불편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구원을 완성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경배해야 하는 날이다. 그리고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온갖 아픔을 어루만지신 그 삶을 우리의 현실에 구체화해야 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어찌 성탄절뿐이겠는가? 매일이 그래야 하지만 특히 이 절기에 집중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염병의 팬데믹을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어버리자. 큰 모임을 할 수 없고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드리더라도 우리의 사랑만큼은 조금도 방해받지 않고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장식과 세리모니에 힘을 쓰기보다 사랑과 섬김을 구체화하기 위해 교회가 힘써온 아름다운 섬김을 더욱 키워보자. 강도 만난 이웃을 돌봐주었던 사마리아사람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과 추위에 떨고 있는 우리 주변을 더욱 세심하게 만져줄 수 있다면 그 어느 해 성탄절보다 더욱 따뜻해지지 않겠는가? 그동안 성탄절 헌금을 어떻게 사용해왔는지 교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해에는 몽땅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이웃을 위해 베풀고 나누는 사랑의 팬데믹을 펼친다면 교회는 반짝거리는 성탄절 장식등보다 더욱 빛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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