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화평과 섬김
(38) 화평과 섬김
[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 차종율 원로목사(새순교회)
  • 승인 2020.12.18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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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에나 서로의 사이를 갈라놓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어느 사회에나 서로의 사이를 갈라놓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버려진 피아노처럼 뭇사람의 관심 밖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버려진 피아노처럼 뭇사람의 관심 밖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 통일 이전에 풀다(Fulda)라는 지역의 한 가정집을 방문했다. 놀랍게도 집 안에서 동서독의 경계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집안의 서독 쪽은 깨끗했지만, 동독 쪽은 먼지가 10cm이상 수북이 쌓여있었다. 주인에게 반쪽 난 집에서 살면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선을 넘어 가고 싶은 유혹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물었다. 어느 누구도 감시하지 않아 종종 동독 쪽으로 건너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다.
에릭 프롬은 “인간의 의식적이나 무의식적 심리와 행동의 밑바닥에는 분리를 극복하여 하나가 되려는 동기가 있다”라고 했는데, 어쩌면 갈라진 조국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독특한 위치에 서있던 그 집과 주인에게서 발현되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다.
12월이면 1년을 되돌아보는 결산을 하고, 새해에 할 일들을 계획한다. 필자에게도 꼭 이루고 싶은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는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경계선처럼 쌓아놓은 막힌 담을 허물어 화합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며 섬기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화평’으로 소개한다. 헬라어 ‘에이레네’(화평)는 히브리어 ‘샬롬’(평화)과 동의어다. 이 구절에서 ‘화평’이라는 단어는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의 적대감이 사라진 상태를 가리킨다. ‘평화의 왕’인 예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선민의식(성전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 율법)이라는 담을 허무시고, 화목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엡 2:16)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도록 가로막던 담(죄)을 허무시고(용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일이다.(히 4:16)
나 같은 죄인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셨으니, 이제는 나 역시 주변의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계 2:19,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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