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대원 교수)

온전한 성찬식 사모하며 ‘거룩한 금식’에 동참하세요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대원 교수)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대원 교수)

온라인으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성찬식은 합당한가. 

코로나19는 한국사회를 온라인 방식으로 바꾸었다. 학교 수업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수업으로, 회사도 온라인 화상회의로, 은행 업무도 온라인뱅킹으로, 음식과 생필품도 온라인 주문으로 바뀌었다. 한국 교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예배도 온라인 예배로, 헌금도 온라인 헌금으로, 성경공부도 온라인 강의로, 소그룹도 온라인 모임으로 온라인화 되고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 예배에서 ‘온라인 성만찬’도 가능한 것일까. 이미 오래 전부터 교회 홈페이지나 유튜브로 온라인 예배와 설교를 공유해 온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전염병의 상황에서 온라인 예배는 별문제 없이 수용했기 때문에, 온라인 성만찬도 가능한 것일까. 지난 4월 고난주간과 부활절에 온라인 성만찬을 행한 교회도 있었고, 2021년 송구영신예배와 신년감사예배를 위해 온라인 성만찬을 준비하는 교회도 있다. 과연 각 가정에서 준비한 빵과 포도주로, 혹은 배달의 민족답게 교회에서 준비한 빵과 포도주를 성도의 가정에 배달하여 온라인으로 성만찬을 실행하는 것이 합당할까.

성만찬은 ‘불화의 사과’

성만찬은 교회 역사에서 논쟁의 불씨였다. 본디 성만찬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믿음의 형제자매들로 하나됨을 경험하게 하는 거룩한 성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성만찬은 영국의 종교개혁자 토마스 크랜머(1489~1556)의 표현처럼 ‘불화의 사과’가 되어 교회 안에서 분열과 다툼의 원인이 되어 왔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예배 개혁이고, 바로 성만찬의 개혁이지 않던가. 로마가톨릭교회는 사제가 성찬의 떡과 잔에 성령이 임하셔서 주님의 거룩한 몸으로 변화되게 해 달라는 에피클레제(epiklese)란 성령임재의 기도를 드리면, 실제로 떡과 잔이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화체설을 믿었다. 그런데 떡을 분병할 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포도주를 분잔할 때 그 잔을 쏟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화체설을 믿기에, 이것은 주님의 거룩한 피를 쏟는 일이 아닌가. 이를 방지하지 위해 교황청은 “살 속에 피가 흐른다” (communio subna specie)는 교리를 콘스탄츠 종교회의(1414~1418)에서 결정하였다. 그 결과 사제는 떡과 잔을 제단 위에 함께 준비해 놓고 떡과 잔을 먼저 먹고 마시고 난 후, 떡을 잔에 살짝 묻혀 본을 보이고 떡만 평신도들이 제단 앞으로 나오게 하여 사제 앞에서 입만 벌리면 신자의 입에 넣어 주어, 잔을 마시게 하지 않는 방식을 지금까지 취하고 있다.

이러한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찬의 문제를 비판하며,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만찬을 제정하신 그리스도께서 “떡과 잔을 받으라”는 말씀 그대로 떡과 잔, 두 가지를 회중에게 분찬하는 이종배찬을 시행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성만찬에 임재하는가에 따라 입장을 달리했다. 루터는 화체설을 부정했지만,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와 함께(with), 그 안에(in), 그 아래에(under) 육체로 임재하신다는 공체설을 주장했다. 반면에 쯔빙글리는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일 뿐이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이라는 기념설을 주장했다. 

존 칼빈은 루터와 쯔빙글리의 극단을 극복하며,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의 떡과 잔에 영으로 임재하신다는 성령 임재설을 주장했다. 이러한 서로 다른 이해의 성만찬은 종교개혁자들에게 불화의 사과가 됐고, 그들은 성만찬 예배를 함께 맛보지 못하는 불행을 겪었다.

그런데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로 일부 교회들이 온라인 성만찬을 시행함으로 또 다시 불화의 사과를 맺을 소지가 제기 되었다. 과연 줌(Zoom)을 통한 온라인으로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임재할까. 아니면 온 교회가 모여 드리는 전통적인 성찬에만 임재할까. 성찬에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질문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천태만상의 성만찬?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성만찬을 시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한국교회는 은혜의 방편이며 보이는 말씀인 성만찬을 시행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몇 가지 예를 보자. ‘개인별’ 성만찬으로, 각 가정에서 준비한 빵과 포도주를 온라인 예배 때 목사님의 집례로 함께 하는 교회. ‘배달된’ 성만찬으로, 미국 아마존 쇼핑 몰에서 개인용 빵과 잔으로 상품화된 성찬 키트를 성도의 가정에 배달해 온라인 예배 때 실천한 교회. ‘찾아가는’ 성만찬으로, 교인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일상의 현장에서 성찬을 나눈 교회. ‘상징적’ 성만찬으로, 담임목사와 일부 참석자만 성찬에 참여하고, 성도들은 온라인으로 지켜보며 참여를 상상하는 교회. ‘드라이브 스루’ 성만찬으로, 성도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온라인예배를 드린 후, 오후 1시부터 교회 앞마당에서 진행되는 성찬식을 차량을 타고 참여한 교회. ‘애찬’을 성만찬의 대안으로 시행한 교회. 아니면, ‘보류된’ 성만찬으로,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성만찬을 잠시 미룬 교회. 그야말로 성만찬의 천태만상이지 않은가. 어떤 방식이 선호되는가. 

교회가 어떻게든 성찬의 은혜에 참여하도록 노력한 점은 칭찬하고 싶다. 그런데 목회자의 소견대로 행한 이러한 천태만상의 성만찬이 과연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합당하고, 실천적으로도 유익할까. 숙고해야 한다.

온라인 성만찬의 합당성

온라인 성만찬의 합당성을 놓고 몇 가지 견해로 정리해 보자. 첫째, 빵과 포도주를 개인별로 준비하거나, 배달을 해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성만찬이 합당할까. 미국장로교회 (PCUSA)의 총회 사무국은 지난 3월 26일에 전염병의 재난상황에서 온라인과 인터넷을 통한 성만찬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교회도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준비한 빵과 포도주로 온라인 성만찬을 진행했고, 일부 한국의 교회들도 빵과 포도주를 개별적으로 준비해서, 혹은 배달하여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가정에 배달해서 성례를 실천하는 것을 금지했다. 왜냐하면 성찬에 참여하지 못한 성도에게 배달까지 하면서 성찬을 실천하는 것은, 마치 성찬이 무슨 신비한 능력이라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주술신앙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더욱이 종교개혁자들은 함께 모인 성도들이 성찬을 통해 한 공동체성을 인식하는 것이 배달을 통한 개별적 성찬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온라인 성찬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 되는 공동체성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찬을 ‘communion’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 장소에 함께 모인 많은 성도들이 한 떡과 한 잔을 마심으로 한 공동체, 한 교회로 하나 됨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모여서’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마치 ‘세례’는 한 성도를 많은 성도의 모임인 교회에 묶는 것이라면, ‘성찬’은 많은 성도를 하나 되게 묶는 것이다. 공간적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온라인 성찬식으로 한 공동체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온라인 성찬은 하나 됨에 한계가 있다.

둘째, 온라인 성만찬은 불가능하기에, 애찬식으로 대신하는 것은 합당할까. 미국연합감리교회(UMC)에서는 온라인 성찬을 거부하고 애찬식을 그 대안으로 제안했다. 사실 애찬식은 초대교회가 성찬식 후에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를 위한 가진 공동식사였다. 하지만 각자의 집에서 준비해 오는 음식의 수준이 달라 빈부의 차에 따라 부작용이 많아져, 220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애찬식이 폐지되었다. 이후 교회에서는 성찬만 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억하는 성찬을 순수한 친교를 위한 애찬으로 대체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고, 더구나 식사를 금지하는 전염병 시절에는 안 될 일이다.

셋째, 상징적으로 목회자가 대표로 성찬식을 하는 것을 성도들이 온라인으로 보고 자신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합당할까. 사실 이러한 ‘상상 성만찬’은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가 독일의 강제수용소에 투옥되어, 떡과 포도주가 없는 상황에서, 마치 떡과 포도주가 있는 것처럼 서로가 떡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며 성만찬을 진행한 사실에서 유래한다. 호주연합교회 (UCA)는 ‘빈손의 성찬’을 제안하며 상상력을 동원한 성찬의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실제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성찬을 통해 한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하는 성찬을 상상만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온라인 성만찬은 불가하다.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는 성찬식까지 세상의 상황에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 전염병 상황에서 어렵다면, 온 성도가 예배당에 함께 모여 행할 수 있을 때까지 성찬식을 사모하며 ‘거룩한 금식’을 하면 어떨까. 성찬을 제정하신 그리스도께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거룩한 금식’을 선언하신 것처럼(마 26:29).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