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대 목사(늘사랑교회)

권성대 목사(늘사랑교회)
권성대 목사(늘사랑교회)

기도에 대해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일이 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유학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신대원에서 ‘헬라어 원상’이라는 과목으로 학생들에게 강의하다가 그리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헬라어를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헬라어에 대한 갈증이 더 짙어졌다. 그래서 그리스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간 것이다. 

유학 갈 때 후원을 약속했던 단체와 개인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머물며 공부하기에는 부족한 액수였다. 그런데 그 후원금마저도 2년이 지나면서 끝나고 말았다. 당시 IMF로 깊은 수렁에 빠졌던 때였다. 더욱이 출발할 때, 약 2년간 있다가 오겠다고 했던 것이어서 그렇기도 했다. 다행히 KBS 문화기행 팀을 돕고 받은 돈이 얼마간 살아갈 수 있는 밑천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계산해보니 1998년 5월 16일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이후에는 버티는 게 불가능했다. 

기도를 시작했다. “5월 16일까지 엘리야에게 보여주셨던 손만한 구름을 보여주소서.” 그때까지 아무 징조도 없으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기도한 지 3주가 되었다. 드디어 1998년 5월 16일 토요일. 그러나 5월 15일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난 여느 때와 같이 가방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때처럼 발걸음이 무겁고 어깨가 처진 때가 없었다.

오전 내내 집중하여 책을 읽었다. 꽤 많은 분량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멍하기만 했다. 책장만 넘긴 것이다. 점심시간 도서관 바깥에 걸려 있는 전화기로 향했다. 혹시 싶어서였다. 집에 전화했더니 아내의 목소리가 흥분되어 있었다. 수년간 왕래가 끊겼던 친구가 미국에서 연락을 해왔는데, 사업하는 자기 남편이 1000달러를 보내주겠다고 해서 계좌번호를 불러 달라는 것이다.

손만한 구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 구름은 하늘을 덮는 구름이었다. 얼른 도서관으로 들어가 책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가방에 넣고 바로 집으로 갔다. 그리고 들어가서 둘이 부등켜 안고 얼마나 감사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아니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끝까지 공부를 마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그 이후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배짱이 생겼던 것이다.

지금 나는 학위를 받고 늘사랑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이런 기도 응답의 경험들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를 이끌어왔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을 잊을 수가 없다. 기도는 내 인생의 열쇠다. 성도들도 이런 기도의 맛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도 새벽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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