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대원 교수)

온라인 플랫폼 적극 구축, 새로운 목회 도구로 삼아라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대원 교수)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총신대 신대원 교수)

비대면, 언택트 시대가 열렸다.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다.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펜데믹에 세계 각국이 내놓은 유일한 대안은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만나지 말라’, ‘모이지 말라’, ‘약속을 취소하라’고 한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 전염병 시대에는 진리가 되었다.

성도와 이웃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은 교회의 예배도 바꾸었다. 누가 뭐래도 예배는 교회의 생명이고, 성도들에게는 영혼의 산소이지 않은가. 따라서 전염병일지라도 예배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기에, 한국교회는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바로 ‘온라인 예배’다. 지난 2월말부터 대형교회로부터 시작된 온라인 예배는 지난 8월 중순경 정부의 현장 예배 금지, 즉 비대면 예배만 허용 조치에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결과를 보니 온라인 예배를 실시한 교회는 84%나 되었다. 순식간에 기적에 가깝게 예배 방식을 전환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장점과 한국교회가 전염병 시대에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 성숙한 상황인식으로 본다. 현재는 일정부분 현장 예배를 드리지만, 한국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놓고 예배 논쟁이 뜨겁다. “모여서 현장 예배를 드리지 않은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며 현장 예배만 진짜 예배라는 ‘현장 예배파’와 “전염병 시대에는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온라인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다”는 ‘온라인 예배파’로 맞서고 있다. 어느 파를 지지하는가. 코로나 전염병 시대에 온라인 예배는 과연 합당한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그리고 목회 실천적으로 합당한가를 살펴보자.

주일예배처럼 진정성 있게 예배하라

온라인 예배는 ‘시공초월’, 시간과 공간을 무너뜨렸다. 예배 시간과 장소도 의미가 없어졌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편리하다.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 원할 때 언제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지 않으신가. 언제 어디에나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교회당에서든,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아니 지하철 안에도 계시지 않는가. 전염병 시대에 예배 장소가 꼭 예배당이어야만 하는가. 예배 장소가 그리 중요할까. 온라인 예배는 비성경적인가.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평범한 유대인 아저씨가 아니라 선지자임을 깨닫고 던진 질문은 예배의 장소 문제였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유대인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20)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신앙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은 답은 무엇이었는가. 예배는 꼭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해야 된다고 하셨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 당시 상황으로 보면, 예수님은 천지개벽할 이야기를 하셨다. 당시 유대인 남자는 1년에 3번씩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만고불변의 의무인데, 예수님은 예배에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사실 초대교회의 예배는 당시 지중해 종교 문화에 비춰볼 때 파격적이었다. 당시 모든 종교는 신전에서 신상 앞에 제물을 드렸다. 그것이 제사였고 예배였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크리스천들에게는 신전이 없었다. 신상도 없었다. 그리고 제물도 없었다. 피의 제사도 없었다. 초대교회는 일정한 모임 장소가 없었다. 오늘은 이 가정, 내일은 저 가정에 모여 예배했다. 아니 토굴에서도 모여 함께 찬송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 듣고, 함께 성찬에 참여하며 예배했다. 참으로 이상한 방식의 예배였다. 초대 교회는 장소에 연연하지 않았다. 어디서든 신자들이 모여 예배하면 족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합당한 예배로 여겼다.

묻는다. 전염병의 시대에 교회당에 아닌, 성도들이 처한 다른 장소에서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가 과연 비성경적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모이기 어렵고, 모이면 성도와 이웃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이 되는 전염병 시대에 온라인 예배는 결코 예배 중단이 아니다. 예배를 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임시적으로 다른 형태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중요한가.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교회당에서 드리는 현장예배도 진정성이 중요하고, 온라인 예배도 진정성이 중요하다. 얼마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느냐. 즉 얼마나 성령과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진정성 있게 예배하느냐가 합당한 예배, 성경적 예배의 기준이다. 따라서 전염병으로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는, 온라인 예배라도 진정성 있고 합당한 예배로 드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온 가족이 가정에서 주일에 교회 갈 때 입는 좋은 옷을 입고 교회당에 나와 주일예배를 드릴 때처럼 주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며 큰 소리로 찬양하고, 헌금시간에는 온라인으로 헌금도 드리고,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온전히 예배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예배 후 식사 시간에는 온 가족이 오늘 예배와 설교를 놓고 즐겁게 대화하며 그렇게 살도록 결단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될 것이다.

장기적인 온라인 예배는 금물이다

그렇다면 혼자서도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몰입하며 진정성 있게 예배한다면, 교회는 필요 없는 것인가. 공적인 예배는 필요 없는 것인가. 그래서 무교회주의가 나오고, 그래서 디지털 온라인 교회가 나오고, 그래서 “예수는 믿는데 교회는 안 나가”라고 하는 가나안 성도가 나오는 것이다. 주님은 교회를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한 장소와 정한 시간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예배 공동체로 세웠다. 어원으로 봐도 ‘예배’를 뜻하는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ια)는 즉 ‘공동의 일’을 뜻한다. 그런데 회중이 없이 혼자서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가 과연 진짜 예배가 될 수 있느냐는 신학적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유튜브 조회수로 회중의 숫자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히 온라인 예배가 전염병 시대에는 임시적으로 좋은 대안이다. 하지만 온라인 예배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이는 신학적으로도, 목회적으로도 수많은 문제를 도미노 현상처럼 야기할 것이 자명하다. 일단 은혜의 통로는 말씀과 성찬인데, 온라인 예배로는 말씀만 받고 성찬이 없으니 은혜가 반쪽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온라인 예배로 온라인 성만찬을 실시한다면 뜨거운 신학 논쟁을 촉발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온라인 예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공예배의 본질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예배의 경건함과 진지함도 약해질 것이다. 성도들을 예배자가 아닌 핸드폰이나 TV로 예배 보는 시청자로 만들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출석하는 본 교회의 예배뿐만이 아니라, 유튜브로 좋은 콘텐츠를 가진 대여섯 개의 교회의 예배를 아주 자연스럽게 비교할 것이다. 이는 좋은 상품의 예배를 찾는 종교 소비자를 만들고, 예배가 상품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결국 온라인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 예배가 아니라 인간 중심적 예배로, 그리고 공동체 중심적 예배가 아닌 개인 중심적 예배로 전락되어, 교인들의 교회 이탈이 늘어나고, 주일성수와 예배관과 교회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감히 교단과 한국교회 앞에 제안한다. 코로나 전염병이 종식되면 교단이 결의하여 한 달 동안만큼은 온라인 예배도 종식시킬 것을 제안한다. 한국교회가 이 일에 힘을 합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을 것이다. 모든 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일정 기간만 송출하지도 않고, 유튜브에도 올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로 돌아가기’ 캠페인을 하는 것이다. 비대면의 대안은 ‘대면’이고, 언택트의 대안은 ‘콘택트’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함께 모여 대면하며 예배해야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흩어진 온라인 예배주의자들이 저마다의 교회에 모여 성도들과 함께 영과 진리로 진정성 있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상상할 때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꼭 그랬으면 좋겠다.

온라인 목회 플랫폼을 구축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 지금은 온라인 비대면 사회이다. 디지털 사회이다. 온라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4차 산업혁명의 AI시대로 진입했다. 세계 인터넷 이용자는 43억8800만명이고, 한국은 5178만 명 중 2019년 기준으로 스마트폰 이용자 수가 4800만명이다. 카카오톡은 3743만명, 유튜브는 3439만명, 네이버는 3084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미래인 청년 세대는 디지털 원주민이다. 온라인이 훨씬 편하고 익숙하다. 그런데 교회는 오프라인만 고집하고, 아날로그 현장 예배만 고집한다면 역시 불통을 자처하는 꼰대 종교집단, 상식이 통하지 않는 넌센스 종교집단으로 취급될 것이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가르침과 그 원리를 상황성과 시대성을 무시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기에, 교회는 선제적으로 온라인 목회 플랫폼을 만들어 3대 7, 4대 6의 비율로 온‧오프라인 목회 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 시스템을 목회의 새로운 도구로 삼는 것이다. 특별히 지금은 전염병 시대이다 유튜브로 온라인 예배로 송출하고, ZOOM(화상회의방식)이나 페이스 톡으로 온라인 성경공부, 온라인 제자훈련, 온라인 심방, 온라인 구역을 실시해 모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성도들을 온라인 목회로 양육하여 교회를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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