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통일’ 너머 진정한 통일 향하여 ②북한이탈주민 정착 돕는 그리스도인

탈북민 3만3000명 시대, 흔히 탈북민들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부른다. 탈북민들이 남북통일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시금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그 먼저 온 통일은 잘 맞이하고 있을까? 많은 탈북민들이 남한사회 정착 과정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장벽에 스스로를 ‘3등 국민’으로 여기며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들을 1등 국민으로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자리에 올라갈 기회조차 막는 처사는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적응을 돕는 것 역시 이웃사랑의 명령을 실천할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아닐까.<편집자 주>

연세대 통일한마당 동아리에서 탈북학생들과 남한 출신 학생들이 함께 모여 통일시대를 꿈꾸고 있다.
연세대 통일한마당 동아리에서 탈북학생들과 남한 출신 학생들이 함께 모여 통일시대를 꿈꾸고 있다.

통일 주역 꿈꾸며 함께 이룬 한마당

연세대학교 중앙동아리인 ‘통일한마당’은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 그대로 탈북학생들을 비롯한 다양한 구성원이 한 데 모여 어우러진 곳이다. 탈북민들에 관심을 둔 남한 출신 학생들은 물론 남북 분단의 아픔에 공감하는 외국인 학생들까지, 모두가 통일을 꿈꾸며 한마당을 이루고 있다. 연세의료원 원목실장 겸 교목실장인 정종훈 교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가 창립 이후 지금까지 줄곧 동아리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통일한마당의 처음은 정 교수가 이 대학에 부임한지 3년째인 지난 2003년 개인적인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매 학기 자신의 수업에 탈북학생이 들어오는 것에 호기심을 느낀 그는 학교 전체에 몇 명의 탈북학생이 있는지 학적과에 문의해 당시 20명이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 교수는 즉시 명단에 적힌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내 다 같이 한 번 만나 관심사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남한사회에 하루 빨리 편입되기 위해 탈북민만의 모임을 단호히 거절한 반면, 또 다른 부류는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며칠 뒤 그의 연구실에 모인 8명이 통일한마당의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탈북민이라는 신분을 드러내는 게 익숙하지 않던 때였던 만큼 그들 역시 서로가 처음이었고, 자신과 같은 탈북학생이 20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놀란 눈치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정 교수는 탈북학생들에게 도전을 심으며 정기 모임을 제안했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 남한사회를 더욱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그만큼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마침내 이듬해 1월 창립총회를 개최했고 그 사이 인원은 더 늘어 15명의 탈북학생들이 참여했다. 적은 인원이지만 탈북학생과 친하고 관심을 보인 남한출신 학생 2명도 동참했다. 남북한 학생들이 함께하는 대학 내 첫 동아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 학기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모임을 가진 게 올해로 어느덧 17년째다.

통일한마당은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학기 중 매주 모여 △평화통일 전문가 특강 △남북 관련 독서 토론 △한반도 정세 주제 토론 등 배움 및 정보 공유뿐만 아니라 북한 영화 감상 혹은 북한 음식 만들기 등 문화 활동을 진행했다. 일반 학생들의 북한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해 평화를 주제로 음악회를 열고 탈북민 출신 예술인을 초청해 공연을 갖기도 했다. 여느 동아리처럼 매 학기 엠티를 다녀오고 방학 중에는 여행을 떠나 유대감을 쌓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통일한마당 구성원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따로 있다. 매년 성탄절 재학생부터 졸업생까지 모두 정 교수의 집에 모여 식사 교제를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동아리를 만든 뒤로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어온 전통으로, 이제는 누가 연락하지 않아도 으레 찾는 연례행사가 됐다.

탈북 학생 성공적 사회 연착륙 돕다

지도교수로서 가장 큰 보람은 탈북학생들이 졸업해 소위 남한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다. 정종훈 교수는 탈북학생들이 대학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이끌었다. 탈북학생들의 경우 국가에서 등록금을 지원받고 지자체에서 생활비를 보조받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당이 안 돼 주말에는 대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중에도 통일 강사 등 제안이 오면 수업을 건너뛰고라도 달려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뜩이나 공부에만 전념해도 남한 출신 학생들과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수업까지 빠지다보니 더욱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정 교수는 이처럼 생활이 어려운 탈북학생들을 위해 직접 기업과 장학재단 등을 수소문해 연결했고, 급박하게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대학교회 성도들과 동창들에게까지 십시일반 모아서 돕기도 했다. 그가 총장에게 건의해 탈북학생들을 위해서 새롭게 만든 장학제도도 많다.

“탈북학생 대부분은 수업을 정상적으로 따라가기 힘든 것이 사실이에요. 그렇다면 ‘학생들이 이곳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사회로 나갈 경우 과연 대학교를 거치는 게 남한사회 정착에 있어서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통일한마당을 만든 동기가 북한 출신 학생들이 평화통일의 여정 속에서, 또 통일 이후 실질적으로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던 만큼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건 당연한 과정이었다.

정 교수의 간절한 기대와 바람이 전해졌을까. 통일한마당을 거쳐 간 다수의 학생들은 남한사회에서 선망 받는 전문 직종으로 진출했다. 금융기관 연구직에 종사하고 있는 이하나 씨(가명)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남한사회 정착을 잘 할 수 있었던 비결로 통일한마당 활동을 꼽는다. 동아리 회장을 역임한 이 씨는 4년 내내 정 교수의 도움으로 매월 3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 받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경제적 지원 그 이상으로 통일한마당이 대학생활에 큰 힘이 됐음을 고백했다.

“남북학생들이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꼈습니다. 교수님을 통해 다양한 자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많은 경험을 가진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사회생활의 기반이 된 여러 정신적 자양분을 쌓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죠.”

"‘통일한마당’ 남한사회 든든한 배경되길"

이하나 씨에게 통일한마당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지도교수가 목사이자 기독교인이면서도 동아리 생활 중 단 한 번도 전도를 강요하지 않은 까닭이다. 과거 남한 정착 과정에서 신앙을 강요당한 경험 탓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그녀에게 정 교수의 이러한 모습은 상처뿐이던 교회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 이 씨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은 이러한 모습은 정 교수가 동아리를 지도하면서 세운 세 가지 원칙 때문이다. 그는 통일한마당이 정치적인 도구와 연구 대상화 되는 것을 극히 경계한 것과 동시에 전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스스로 항상 다짐했다. 탈북학생들이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마음의 감동으로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역사요, 성령의 영역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정 교수 역시 동아리 지도교수로서 상처를 받기도 여러 번이었다. 근거 없는 오해와 모함에 그만 두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를 필요로 하는 탈북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고 내년에는 안식년에 들어가 정말 내려놓아야 할 때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탈북학생들과 호흡할 차기 지도교수를 세우는 게 정 교수에게 남아있는 중요한 과제다.

“탈북학생들이 통일한마당 안에서 좋은 남북한 친구들을 만나고, 또 그것이 에너지가 돼 남한사회에 정착하는 데 든든한 배경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젊은 시절 만남이 평생 이어져 삶의 동지로, 더 나아가 평화통일의 동지로 엮어지는 것이 가장 기대하는 바입니다.”


“탈북민 상처치유와 필요 도와야”

탈북민자립지원센터에서 탈북민들이 남한사회 정착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지난 호에서도 기술한 대로 최근 발표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2020 북한 사회변동과 주민의식’ 조사 결과, 탈북민들이 남한적응에서 겪는 어려움의 요인으로 문화적 차이와 경제적 어려움이 1순위와 2순위로 지목됐다. 그들의 실제적인 어려움에 교회도 귀를 기울일 때다.

탈북민 출신의 강철호 목사(새터교회)는 서울 목동에서 ‘탈북민자립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성도 대부분이 탈북민인 교회에서 운영하는 만큼 탈북민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곳은 아니다. 지난 2008년 설립된 이래 탈북민의 사회 적응과 자립 생활 지원, 탈북민 자녀공부방, 상호 간 정보 교류 등 남한사회 정착에 필요한 각종 지원과 사회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강 목사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탈북민들이 정착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탈북민들의 성향에 맞는 직업을 찾도록 돕는 식이다. 그는 “먼저 온 탈북민들의 경험만큼 중요한 수업은 없다. 남한사회를 살아가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다음 사람들은 겪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등촌동에 위치한 ‘북한체제트라우마 치유상담센터’도 탈북민 출신의 목회자가 운영하는 곳이다. 대표 유혜란 목사는 북한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 탈북한 뒤 남한에서 상담학박사학위와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됐다. 그녀는 남한사회의 다양한 정착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탈북민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바라보며, 탈북민들의 사회 심리적 위기 극복을 돕는 기관을 설립했다.

유 목사는 “탈북민들은 탈북 과정에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많이 겪으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탈북민들에게 있어 가장 큰 트라우마는 북한체제에 대한 상처”라며 “탈북민들이 한국사회 정착에서 제일 어려워하는 대인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체제 트라우마로 야기된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센터에서는 치유교육과 함께 집단 및 개인 상담으로 탈북민들의 자존감 회복을 도와 남한사회에 정착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녀는 “상처 입은 탈북민들이 참자기(true self)를 회복해 건강하고 행복한 정착을 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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