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통일’ 너머 진정한 통일 향하여 ①북한이탈주민 조사로 본 통일의 길

탈북민 3만3000명 시대, 흔히 탈북민들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부른다. 탈북민들이 남북통일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시금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그 먼저 온 통일은 잘 맞이하고 있을까? 혹시 탈북민들이 단순히 남북 분단을 실감하게 하는 존재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을 품기 위한 한국교회의 과제를 묻는 질문에 한 원로는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을 읊었다. 탈북민 각 영혼의 소중함을 표현한 것이다. 먼저 온 통일을 넘어 다가올 진정한 통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교회 도움, 남한 적응 가장 큰 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최근(2019∼2020년) 북한을 이탈한 109명의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남한적응에서 겪는 어려움(매우+다소)의 요인으로 ‘문화적 차이’(74.3%)를 첫 손에 꼽았다. 탈북민들은 이밖에 ‘경제적 문제’(63.3%)와 ‘심리적 외로움’(58.7%), ‘사회적 편견’(49.6%), ‘인간관계’(42.2%), ‘건강문제’(32.1%)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다소 편차는 있으나 2017년 해당 문항이 추가된 뒤 응답순위는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으며, 전년도에 비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지목한 응답이 높아졌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이번 조사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결과가 있다. 탈북민들이 이와 같은 어려움 속에 정부 이외에 남한사회 정착에 가장 도움이 된 요인으로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의 지원’을 꼽았다는 것이다.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33.3%로 세 사람 중 한 명꼴이다. 뒤를 이어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한 정보획득’(26.6%), ‘NGO 등 민간단체의 지원’(24.8%) 순으로 나타났으며, 기존에 정착해 있던 북한이탈주민들의 도움이 힘이 됐다는 답변은 2018년 20.7%, 2019년 19.8%, 2020년 11.9%로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실제로 남한에 들어온 탈북민들이 정착과정에서 종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남북하나재단의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 결과’에서는 북한이탈주민 둘 중 하나는 예배 등 종교단체활동(49.7%)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일반국민들의 종교 활동 참여도 대비 21%나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탈북민들은 어느 종교를 가장 선호하고 있을까? 얼마 전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2007년 이후 한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내용을 담은 <2020 북한 종교자유 백서>를 발간했는데, 여기에 따르면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1만4198명 중 41.4%(5874명)에 달하는 탈북민들이 ‘기독교’라고 답했다. 뒤를 이어 ‘불교’가 1520명(10.7%), ‘천주교’ 1385명(9.8%) 순이었으며 ‘종교가 없다’는 응답자는 3975명(28%)이었다.(미상 1369명) 이를 바탕으로 봤을 때 사실상 교회의 지원이 탈북민들의 남한사회 정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북한이탈주민들 사이에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까닭으로 탈북 이후 남한에 입국하기까지 선교사 또는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앞선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조사에서 ‘종교 활동을 시작한 시기’에 대한 질문에 ‘국정원’(조사시설)에서부터라는 응답이 3544명(34.7%)으로 가장 많았지만, ‘중국’이라고 답한 3,022명(29.6%)과 ‘중국 외 제 3국’을 고른 584명(5.7%)을 더하면 오히려 북한을 이탈해 남한에 들어오는 과정 속에 종교를 갖게 된 수치가 더 높다는 점도 이를 반영한다.

탈북민 교회 정착, 눈높이 맞춰야

문제는 이렇게 남한 사회 적응에 앞서 갖게 된 신앙을 얼마나 유지 하는가 인데,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정착 지원을 받는 보호 기간 5년 이후 대략 25%의 탈북민들만이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각 교회에서 말하는 탈북민 수와 달리 실제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는 성도는 1000여 명 남짓, 전체의 3% 가량에 불과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지난 2002년 탈북 후 통일부 산하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근무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탈북민들의 사회정착 및 적응을 도와온 채경희 교수(총신대 평화통일개발대학원)는 그 이유로 ‘탈북민에 대한 교회의 이해부족’을 꼽았다. 하나원을 나와 각 지역으로 흩어진 탈북민들이 새로운 교회를 찾는 과정 가운데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곳을 찾지 못해 결국 떨어져 나간다는 설명이다. 채 교수는 “사실상 대부분 탈북민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보니 눈높이에 맞는 대화가 어렵다. 성경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탈북민과 탈북민을 어떻게 교육할지 훈련되지 않은 일선교회 담당자들 간의 조화가 안 되다보니 점점 멀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면서도 “그렇다고 이것을 교회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도 북한이탈주민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도 모두가 적절치 않다. 단지 접점이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당부하며, 교회로서는 그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지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탈북민과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공부가 뒷받침돼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탈북민이라고 해서 마냥 이해하라는 태도는 옳지 않다. 공부를 해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서 “남한의 잣대로 보면 탈북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겠지만, 그들이 살아온 환경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지나온 경로를 생각하면서 간극을 조금씩 좁혀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요된 신앙 벗어나 인격적 감화로

탈북민들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북한 출신이라는 특수성이 아니라 일반화된 시대적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강경민 목사는 “오늘날은 사회 전체적으로 전도가 떨어진 시기”라며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전제를 갖고 탈북민들에게도 전도와 적응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접근에 있어서는 탈북민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함을 강조했다. 강 목사는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접근하는 방법과 니고데모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달랐듯 탈북민에 맞는 접근을 해야 한다”면서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교회 덕 보면서도 예수 안 믿냐’는 식의 인식이다. 잘해주는데 신앙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 대한 불편은 잘못된 기대일 뿐 아니라 우리도 안 되는 것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남한사회 정착 초기 교회의 도움이 가장 큰 힘이 됐다는 탈북민들의 고백이 5년 이내 대부분 사라지는 데 대해 “제일 어려운 상황에 도움을 받은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영향을 미쳤겠지만, 탈북 과정에서는 교회가 유일한 구세주였을지 몰라도 한국에 들어온 뒤에는 다른 살 길이 열리면서 나타난 결과”라며 “아쉬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강요받은 신앙에 대한 반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탈북민들을 향한 이웃사랑의 행위가 사랑 자체로 목적을 가져야 하는데 어느 정도 전도의 수단화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물론 교회의 궁극적 목표는 영혼구원이지만, 이웃사랑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신앙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강 목사는 “결국 인격적 감화가 탈북민 복음전도의 키”라며 “사랑의 위력이 나타나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교회를 찾도록 하는 것이 정도”라고 힘주어 말했다.


“탈북민 삶의 이해가 선행돼야”

평통연대 ‘탈북여성 편견’ 주제로 포럼 열어
 

평통연대가 포럼을 열고 탈북민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극복 과제를 논의했다.
평통연대가 포럼을 열고 탈북민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극복 과제를 논의했다.

많은 탈북민들이 정착과정에서 마주하는 편견과 차별 등으로 사회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화통일연대(이사장:박종화 목사·이하 평통연대)가 10월 28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학교에서 ‘탈북여성에 대한 편견에 답하다’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북한이탈주민 여성을 비롯한 탈북민 전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편견과 차별 등 그들이 마주한 현실을 바탕으로 사회적 과제를 짚어보는 자리였다.

발제자로 나선 김석향 교수(이화여대 북한학과)는 북한의 제도에 비춰 주민들 삶의 실태를 소개하며 “탈북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있을 때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탈북 순간부터 탈북 이후 국내로 들어오는 전 과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탈북민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면서 각 사람이 갖고 있는 삶의 역사성을 바라볼 것을 조언했다. 반대로 탈북민들 역시 한국사회의 변화와 환경을 알 필요가 있음에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오해가 쌓여간다고 우려하며 “소통의 균열은 계속 쌓여 가는데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토론자 김병로 교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는 탈북민들의 사회적응을 돕기 위해 통합지향적 정책을 제안했다. 그동안 탈북민들을 분리해 정책 지원을 펼치다보니 오히려 통합에 방해가 된다며 서로 대면하는 것이 탈북민들을 향한 편견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탈북민 출신으로 토론에 참여한 한에스더 전문상담사(남북하나재단)는 통합정책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가정과 사회, 직장, 학교 등 곳곳에서 여전히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만큼 섣부른 통합은 오히려 고통을 가중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한 상담사는 우선 편견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탈북민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 지양 △남북한주민에 대한 현실적 인식 △정부차원의 남한주민과 탈북민 집단 간 접촉 기회 제공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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