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마태복음 2장 1~3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셨을 때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는 말 한마디로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헤롯은 유대인들에게 왕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헤롯이 유대인으로 개종한 에돔인으로서, 로마에 가서 돈을 주고 왕위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키스트메이커는 주장하였다. 안토니의 제의와 옥타비안의 동의를 얻어 헤롯은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주전 40년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으며, 유대인의 반대를 극복하고 주전 37년 왕국을 장악하였다.

그는 전쟁에 용맹하고, 노련하였으며, 학식이 있고, 영리하였지만 극히 의심이 많고 잔인하였다. 하스몬 왕가 전체를 멸족시키고, 자기의 통치에 반대한 다수의 유대인을 사형에 처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지극히 사랑한 아내였던 마리암네와 그녀와의 사이에 난 두 아들까지 죽였다. 그는 로마의 관습과 제도를 모방하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 일 등으로 인해 성전 재건이라는 큰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유대인의 호감을 살 수 없었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정통성이 있는 왕이 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헤롯이 얼마나 살기등등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예루살렘이 듣고’란 표현은 대부분 헤롯 추종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왕이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한 소동이 아니라 그분을 죽이려는 소동이었다. 헤롯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미가서 5장 2절에 근거하여 ‘베들레헴’이라고 답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예수님이 누구며, 어디서 나실 것을 다 알면서도 그분을 찾아가 경배하지 아니하였다.

예루살렘의 소동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를 아는 지식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역사적인 인물로 믿는 것만으로는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중심으로 그를 사랑해야 한다.

종종 교회에서 불미스러운 소동이 일어나,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 원인을 자세히 보면 자기의 왕권을 지키려는 헤롯과 그의 추종자인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같은 인물들이 교회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신앙생활을 ‘영적 전쟁’이라고 했다.(엡 6:12)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욱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기도해야 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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