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물고기 중에 ‘콰트로 오호스’(Quatro Ojos)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네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눈알 하나에 렌즈가 둘씩 있는 것이다. 콰트로 오호스란 이름 자체가 네 개의 눈이란 뜻이다. 렌즈 하나는 위를 보고, 다른 하나는 아래를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통의 두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위의 렌즈로는 먹이를 찾고 아래의 렌즈로는 적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사람들도 콰트로 오호스처럼 위와 아래를 함께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런 눈을 주셨다. 육의 눈뿐 아니라 영의 눈을 주셔서, 땅 아래뿐 아니라 신령한 위의 세계까지도 바라보게 하셨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눈이 퇴화되어 위를 보지 못하고 밑바닥을 바라보는 눈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지평선이나 수평선을 영어로 호라이즌(Horizon)이라고 한다. 헬라어의 ‘호로스’에서 나온 말이다. 호로스는 제한(Limit)을 의미한다. 옛날 사람들은 수평선을 인간 시야의 제한선으로 여겼다. 인간이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의 한계선이란 말이다. 수평선 너머에 무수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바라볼 수 있는 눈의 한계로 인해 더 이상 볼 수 없음을 말한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한다. 믿음장에서는 제한된 시야를 가진 사람들을 책망하고 있는데 가까운 곳, 아래의 것만 바라보고 높고 멀리 보지 못하는 것을 신앙과 반대되는 불신앙으로 규정하고 있다.(히 11:8)

대기권 밖 우주에 들어서면 땅에서 발을 붙이고 있을 때보다 시야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우주를 경험한 우주비행사들은 두 개의 수평선을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는 감각적 수평선(Sensible Horizon)이라고 하는데, 육신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수평선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천체 수평선이다(Celestial Horizon). 지구를 떠나 우주 속에 들어가면 수평선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우주 속에서 하나님의 궤도를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믿음의 수평선이라고 한다.

이런 하나님의 수평선에 대한 소망을 히브리서는 믿음이라고 했다. 이런 차원 높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수평선이 무너진다고 해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업에 실패하거나 병이 찾아오거나 곤고한 일을 만나도 높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망을 위에 계신 하나님께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수평선은 경제적인 부요나, 은퇴 후에 요트 타고 세계일주, 전원주택 마련 등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낮은 수평선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이라면 낮은 수평선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언제나 세상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제한선이 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실망하지도 않는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의 수평선은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땅에서 나그네라고 불리웠지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고, 고난과 괴로움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었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 40일까지는 버틸 수 있다.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11일까지 견딘다고 하며,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는 8분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고는 단 1분도 살 수 없는 존재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이 날마다 올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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