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통을 위한 창
[사설] 소통을 위한 창
  • 기독신문
  • 승인 2020.10.2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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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물이든 대부분 창이 있다. 요즘은 지하라 할지라도 ‘썬큰’이라는 시설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게도 한다. 창을 내기 위해 비용과 시간도 더 소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창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래서 요즘은 ‘통창’이라고 불리는 더 큰 창을 설치하거나 건물 자체를 유리로 마감하기도 한다. 밖이 보이지 않는 건물에 사는 것은 감옥에 갇힌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은 외부와의 소통, 세상과의 대화라 할 수 있다. 제105회 정기 총회를 코로나19로 인해 화상으로 진행했다. 비상적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해서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총대들은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답답함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총회장이 소통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몹시 바람직하게 보인다. 이번에 분산 개최되었던 35개 거점교회 목회자와 흠석사찰위원 등을 초청해 파회감사예배를 겸해 총회의 비전을 나눴다. 또한 총신대 정상화를 위한 학생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대화도 보기 좋았다. 이런 소통을 위한 접촉면을 넓히는 모습을 더욱 자주 보기를 기대한다.

총회 내의 소위 ‘인싸’뿐 아니라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밑바닥 민심까지 골고루 살핀다면 105회 캐치프레이즈인 ‘세움’을 보다 분명하게 성취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상당수의 중소형 교회들은 위기 그 자체다. 

특히 농어촌 미래자립교회와 도시 임대교회는 더욱 답답하다. 이런 상황에서 총회가 세밀하게 살피고 격려하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한 소통이 원활해지고 힘을 가진 교회들이 이 건강한 소통에 협력하기를 기대한다.

노파심으로 한 마디 조언한다면 밖이 환하게 보이는 ‘통창’처럼 시원하게 소통하는 총회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가로 막는 장애물은 곳곳에 있을 수 있다. 부디, 몇몇 주변 인사들에 의해 총회장의 소통을 위한 창이 가로막히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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