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총회장)

제105회 총회를 앞두고 역사 다큐를 준비하여 상영하려고 했다. 필자는 개혁측 출신으로서 총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 먼저 우리 총회의 눈물겨운 역사를 담은 다큐부터 만들어야겠다는 감동이 왔다. <총회 100년사>도 읽어보았지만 너무 나열식으로 전개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보수적인 신앙과 칼빈주의 신학을 지키기 위해 허허벌판으로 나와 오늘의 총회를 이룬 선진들의 순혈적 사명을 담은 감동적 다큐를 만들어 새 역사의 지평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일각에서 소비어천가(?)를 부르는 다큐를 만든다느니, 누구 한 사람을 띄우려고 한다느니 하는 여러 말들이 나왔다. 그러나 필자는 일체의 언급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반응이 나오기 전에도 PD가 나에게 정규오 목사가 살았던 헐몬수양관, 이영수 목사가 세운 중부대학교, 백남조 장로의 사역 현장과 묘지 등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필자는 마지막에 제105회 총회장으로 비전과 각오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총회 마지막 시간에 다큐를 상영하고 나니까 대다수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저런 말을 했던 사람들도 모두 입을 닫아버렸다. 만약에 현장총회를 실시하여 현장에서 상영을 했다면 그 감동은 더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다큐 CD를 1만5000개를 만들어서 전국 교회와 지방신학교, 도서관에도 배포하려고 한다. 역사 다큐를 만든 건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히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의 영광과 정신적 가치를 되새기며 미래의 새 길을 열어가자는 뜻이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세계사적 대전환 사건을 맞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공간과 제도, 전통의 권위가 조금씩 사라졌다. 소위 말하면 하인리히의 법칙대로 공간과 제도의 권위가 조금씩 붕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기존의 매뉴얼만 작동시킨 채 다가올 미래를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를 통해서 공간의 권위, 제도의 권위, 전통의 권위가 완전히 깨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공간, 제도, 전통의 권위를 되살리려고 하지만, 결코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공간의 프레임을 만들어 초월적 정신과 가치, 영성을 제시하며 교회의 새 길을 열어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너무 화석화, 정형화, 제도화 되면서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바리새화 되어가는 면도 있었다. 그러므로 코로나19로 재편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존재, 새로운 교회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적 공간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영적인 공간, 복음의 공간, 초월적 공간을 만들면서 초연결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는 하나님이고 그 분의 말씀이다. 따라서 코로나19의 위기일수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더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해야 할 부분은 확실하게 변해야 한다. 중세 때 흑사병이 닥쳐서 사람들이 모이지를 못하니까 공간의 권위, 강단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고 하지 않는가. 코로나19로 인해 초대형교회들도 옛날처럼 빽빽하게 앉아 예배드리던 때는 당분간 회복하기가 힘들 것이다. 코로나19가 조금 완화되고, 아니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예전처럼 수많은 군중이 새벽에 강단까지 올라오는 그런 집회 문화는 쉽사리 회복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의 영광성과 거룩성, 그리고 교회론의 본질은 변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주인으로 모시는 영적 공동체,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결코 변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공간 공동체, 현장 공동체를 넘어서 역설적 영적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우리 교회는 교회 주변에 코로나19가 광풍처럼 몰아칠 때 소수가 현장예배를 드리면서도 화상 줌 예배를 도입하였다. 공간을 초월한 역설적 영적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현장예배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더 교회를 사모하고 현장예배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한 것이다. 그래서 주일에 오지 못한 사람은 평일에 교구별로 조를 짜서 새벽, 낮, 오후, 저녁으로 기도회를 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 스스로 성금사모헌금을 하기 시작하였고 주일에는 본당 말고도 각 방마다 50명 내외로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격한다 할지라도,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모이면 더 좋고 흩어져도 전혀 문제가 없는 역설적 영적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영적 공간의 카리스마와 권위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영적 공간이 이루어지면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담임목사의 설교가 하트 투 하트,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고 역설적 영적 공동체가 이루어져 성도들의 헌신이 절대로 약화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자원적 헌신과 뜨거운 사명의 역사로 재정도 결코 줄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때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였던 것처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영적인 공동체의 결속력이 더 강화된다. 이젠 기존의 매뉴얼이나 뻔한 포맷으로는 안 된다. 다시 영적 부흥의 터보엔진을 달고 영적 내공을 쌓아놓은 교회만이 공간의 공동체를 넘는 역설적 영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우리 총회도 미래전략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비전을 설계하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역사가 담고 있는 정신, 제도 안에 있는 의미, 전통으로 흘러온 가치는 더욱 붙잡되, 그 껍데기만을 붙잡으려고 하면 안 된다. 코로나19를 통하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블루 시그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피엔스 시대는 미래를 대비하며 변화하는 공동체만이 세상을 이끌 수 있다. 우리 총회도 100년의 미래를 설계하며 새 부대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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