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회 총회 임원들의 첫 걸음은 양화진이었다. 그곳에서 언더우드, 헐버트, 알렌 선교사 등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고개 숙인 임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찌되었든 기대가 된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이 그 곳이기에 그렇다. 언젠가 주기철 목사의 묘소를 첫 방문지로 삼은 회기도 있었다. 같은 의미일 것이다. 과거 역사지만 그것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세움’을 입은 흔적을 찾는 것은 오늘과 내일을 가꾸는 데 더 없이 큰 힘이 될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하나의 퍼포먼스로 끝나지만 않는다면.

한국교회를 세우기 위해 귀한 피가 뿌려졌다. 1866년 대동강변의 토마스로부터, 양화진에 모셔진 그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오늘의 교회를 위한 주춧돌이었다. 언더우드 묘 오른편에 보면 어린 아이들의 작은 묘지가 있다. 그 부모가 가슴에 묻었을 그런 아기들은 선교사들이 사랑한 조선 땅에서 태어나 천국으로 떠나보낸 아픈 흔적이다.

그런 양화진에서 제105회 총회 임원이 된 것을 자랑하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 선교사들 앞에 고개를 숙인 임원들의 마음이 내내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아니 더 깊어지고 구체화되기를 바란다. 양화진으로 상징되는 희생으로 인해 우리가 누린 이 부흥과 평안의 열매를 계속 이어가야 할 책무가 임원들의 어깨에 무겁게 자리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재건이 요구된다. 세움을 위한 역사적 헌신을 무색케 하는 오늘의 현실 앞에 통탄만 하고 있을 수 없다. 다시 세우기 위한 희생이 요구된다. 임원이란 그 희생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자리다. 그렇게 섬길 때 양화진에 누운 그들처럼 빛날 것이고 한국교회가 두고두고 기억하며 머리를 숙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든 세상이든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니 부디 명심하기를 바란다. 몸과 마음을 불태우며 섬긴다면 교회와 교단이 든든히 설 것이고, 한국교회의 희망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섬긴 임원들이라면 총회회관에 일 년 동안 걸리는 사진으로 그치지 않고 양화진의 흔적처럼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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