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청년세대, 목회자다움 요구한다”
[기획] “청년세대, 목회자다움 요구한다”
윤리 문제에 민감, 교회사역 중심에 세워 동역해야
홍승영 목사(장지교회)
  • 정형권 기자
  • 승인 2020.09.22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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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뢰도 추락은 끝이 없어 보인다. 수년째 하락을 거듭하더니 코로나19 이후에는 아예 적대적으로 변했다. 특히 청년세대의 반감은 극에 달한다.

이에 대해 장지교회 홍승영 목사는 추락한 이미지는 단시간에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청소년 때부터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동역자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청년사회는 목회자의 목회자다움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홍승영 목사(장지교회)
홍승영 목사(장지교회)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19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더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의 부정적 이미지는 극에 달하는 것 같다.

=3월 초 주일 예배드리는 중에 구청 공무원이 찾아왔다. 지역 주민으로부터 교회가 모여서 예배하는 것 같다는 민원이 제기되었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주일 모임이 금지되지 않던 시기였고 우리 지역의 상황도 큰 문제는 없는 때였다. 어린이 보호와 안내를 위해 세워둔 표지판을 보고 민원을 제기했다는 말을 듣고 안내판을 치웠더니 그 이후로는 괜찮아졌다. 이런 민원의 상당수는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엄마들이 제기한다는 말을 들었다. 청년세대의 정서와 비슷한 세대다. 교회는 그 분들의 부담과 두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접촉이 크게 제한 받고 있는 가운데서 대부분의 정보가 온라인으로 유통되고 있다. 대부분 정보 공급자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전달 받는 것으로 교회는 사회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설명할 길이 없는 셈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 청년들은 직장에서 불편을 느낀다. 아무래도 후배이자 하급자인 상황에서 다양한 불평을 직접 듣게 되면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고마운 것은 청년들이 그러한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에서 들은 대로 그분들의 용어로 설명도 하고 안심도 시켜드린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긴 세월을 통해 쌓여왔고, 최근의 현상은 사회에 만연한 양극화 현상이 반영된 면도 있다. 전혀 부정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는 20%정도의 설문은 아마 그리스도인들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정작 목회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청년들은 개별 목회자들에게 친절하다.

부정적 이미지는 청년세대의 복음화에도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어떤가?

=지금까지 교회는 온텍트’(온라인 컨택트) 시대에 적합한 전도전략을 세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여전히 생활 속의 접촉을 통한 개인전도는 유용하다. 특히 청년전도는 청소년 시절을 거치며 신앙을 상실했던 청년들과 그 주변의 불신자를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때 전도자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가 큰 영향을 미친다. 청년들은 온라인의 활동과 실제 생활을 항상 일치시키지는 않는다. 폭력적인 게임을 한다고 해서 폭력을 쓰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온텍트 활동을 통하여 연결이 되었더라도 결국은 교회 공동체의 특별한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대면하여 만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때까지 개인적인 관계에서 복음을 나누고 양육하도록 성도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

한 번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우려된다. 한국교회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청년세대에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어떤 방법이 있나?

=이미지는 어떤 한두 가지 사건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반면 한 번 형성된 이미지는 급격하게 개선되지 않는다. 교회에 대해 비난이 일어나는 것은 상대적으로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번 설문은 그러한 기대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냈다고 본다. 윤리적 회복, 구제, 소통, 통합의 노력 같은 사회적 요청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윤리성에 대해서는 그래도 교회가 더 낫다는 것을 젊은이들도 알고 있다. 다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에 더 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 목회자가 회사 선배보다 더 윤리적이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라는 명칭에 걸맞게, 목회자 수준으로 윤리적이길 원한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걱정을 이해하고 안심시켜야 한다. 윤리와 도덕을 실천하기 위해 내적인 노력 외에 그 사실을 잘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청년세대와의 소통은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의 청년들과 성경 토론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교회의 공간을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문화 활동을 계획할 수 있다. 대그룹 모임을 생각하지 말고 소규모의 맞춤 모임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타 강습을 반년 쯤 하다 강습생 없다고 중단하는 식으로 해서는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 실제로 지방의 대학가에 있던 상가의 작은 교회가 주중에 학생들의 공부 처소로 개방하면서 수년 후에 좋은 열매를 거둔 경우도 있다. 각자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되 진심을 담아야 한다.

최근 들어 고민하는 것은 과거 청년사역 부흥시기에 있었던 청년사역 전문가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원선교단체 등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던 그들은 실제로 교회 청년부의 변화까지도 주도해 좋은 열매를 거두었다. 청년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사역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전문 사역자들이다. 모든 교회가 전문 사역자를 원하지만 전문 사역자를 위한 배려는 없다. 열매만 따려고 해서는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나무가 성장하면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모든 교회가 소수의 청년들을 위해 전문 사역자를 두기 어렵겠지만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담임 목회자나 사모가 일정 부분 감당할 필요도 있다.

기독교 신뢰도가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장지교회는 청년세대 복음화에 관심을 쏟고 실제로 열매도 맺고 있다. 그 노하우는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청년세대를 사역하기 보다는 청년세대가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류화(mainstream)’. 장지교회 청년들은 교회의 한 부서가 아니라 교회의 중심으로 서있다. 19세 이상은 성인이다. 청년들은 성인 성도로 선배들과 동역하며 신앙도 배우고 정서적인 지지도 받고 있다. 물론 어설픈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역의 현장에서는 사역하는 청년들을 돌볼 성숙한 사람을 배치한다. 주일학교를 예를 들면, 장년 교사 한명은 청년 교사들을 돌보기 위해 노력한다. 청년 수련회라면 청년부 출신의 선배들이 그 역할을 한다.

청년들이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면 지지해주고 싶은 친구들을 초청한다. 전도가 사명이지만 억지로 순종하는 청년들은 거의 없다. 내가 좋아서, 내가 행복하고 꼭 소개하고 싶어 교회로 초청하는 것이다.

10년 전 우리 교회 청년부는 단 두 명이었다. 전문 목회자도 없었다. 새로 담임목사가 되어 그 두 사람을 직접 양육했다. 이전에 10여 년간 청년사역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그 두 사람을 200명처럼 섬겼고 지금은 실제로 200명이 되었다. 그렇게 청년부가 성장했다. 청년 전임목사 외에 여러 사역자들이 있는 지금도 담임목사의 장년사역 중 많은 부분은 청년들을 향해 있다.

청년세대 복음화를 위해 총회가 해야 할 일,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목회자들을 만나보면 모두가 청년부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청년복음화를 통해 다음세대를 굳건히 하고자 한다. 순서를 조금 바꾸어 보자. 다음세대를 위한 청년부가 아니라 청년을 사랑하고 아꼈더니 건강한 다음세대가 생긴 것이다. 청년들은 감수성이 예민하다. 똑같이 사역을 해도 누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지 곧 알아챈다. 사회적으로 청년들을 위해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진심을 담아 잘 전하는 것이 총회가 할 일이다. 목회자와 장년 성도들의 윤리성을 보기 원하는 청년들에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지교회가 하기 어렵다. 사실 교회에 있는 청년들은 사랑을 표현해주기만 해도 목회자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문제는 사회의 젊은이들인데 그들을 위한 사역은 교단이 하며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 청년 전문사역자들이 실종되다시피 한 이 시기에 청년사역을 배울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지교회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는 청년을 성인 동역자로 보아야한다. 어렵고 부담스런 일을 맡기라는 뜻이 아니다. 불편한 일은 경험 많은 장년들이 해야 한다. 다만 천국으로의 여정과 복음의 사명을 함께 담당하는 동역자로 여겨 청년들이 섬길 부분을 개발하고 맡기고 지원해야 한다. 실제로 사역을 해 본 바로는 청소년기부터 적절한 수준의 복음사역에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 이것은 장년들과 목회자들에게도 중요한데, 교회의 정체감을 극복하고 밝은 소망을 품을 수 있다.

어쩌면 지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사역을 연구하는 것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가 청년사역을 원하지만 기본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처럼 노는 것은 아이들이 잘 한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들이 잘 안다. 교회는 깊은 사랑을 가지고 지켜보며 격려하며 칭찬해야 한다.

10년 전 두 명이었던 우리 교회의 청년들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자녀들과 함께 교회의 중심이 됐다. 이 결과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 10년 전의 그 두 청년을 사랑한 것이었다. 결과는 늘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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