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씁쓸한 태풍 추억
[목회칼럼] 씁쓸한 태풍 추억
박영찬 목사(대구 동산교회)
  • 정형권 기자
  • 승인 2020.09.22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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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찬 목사(대구 동산교회)
박영찬 목사(대구 동산교회)

2003년 태풍 매미 때의 일입니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의 굉음 사이로 전화벨이 불안하게 울렸습니다. 발신인은 관리집사였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지붕에 또 다시 문제가 생긴 줄 알았습니다. 강대상 위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전화한 줄 알았습니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울먹이며 전했습니다. “목사님! 사람이 죽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우리 교회 담장 바로 밑에 살고 있는 할머니 성도였습니다. 월세로 사는 그 할머니의 조그마한 단칸방에는 부엌이 따로 없었습니다. 슬레이트 지붕 처마를 우리 교회 담장과 연결해서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몇 명이 있었지만, 명절 외에는 거의 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절마다 구제금을 가지고 가서 손을 잡고 위로하고 심방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사인은 교회 담장 붕괴로 인한 뇌출혈이었습니다. 낡고 금이 간 교회 담장이 며칠 동안 계속된 폭우에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일부가 무너진 것입니다. 마침 부엌에서 식사준비를 하던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급하게 교회에 도착했을 때, 혼돈 그 차체였습니다. 119구급대원들과 경찰들, 구청 직원들, 주민들이 교회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면서 교회의 화분들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대형 유리창을 벽돌로 깨뜨리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건장한 아들들이었습니다. ‘목사, 나와’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경찰도 목사를 찾았고, 어느 새 달려온 방송기자도 목사를 찾았습니다. 솔직히 멀리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먼저 유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유구무언의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천년이 가도 식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할머니를 돌본 교회의 모든 사랑은 분노의 급류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습니다.

마침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장로님들이 격분한 유족들과 불편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그토록 험악했던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정중한 사과와 더불어 최선을 다한 위로금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모든 상황이 갑자기 종결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토록 시끄럽던 무전소리, 고함소리, 사이렌소리가 묵음으로 변하고 오직 빗소리만 들렸습니다. 요즘도 태풍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 해의 텅 빈 교회 마당이 씁쓸하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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