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원 목사(효성교회)

윤희원 목사(효성교회)
윤희원 목사(효성교회)

금번 105회 총회는 지금까지의 어떤 회기보다 더 어렵고 힘든 총회가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시작된 뉴 노멀(New nomal)시대에 열리는 총회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삶의 방식도 회의의 방식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집단적 모임을 통해서 회의할 수 없다면 적어도 1600여 명이 모이는 총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는 ‘발등의 불’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모이는 총회의 결의는 모임의 성격부터 결국은 주마간산 격이 되기 쉽다. 개혁신학적인 근원을 통해서 판별해야 하고 또한 처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의 주체에 대한 철학 사회 논쟁 속에서 보면 경험론은 모든 지식의 근원을 ‘관찰’에 두고, 주지론은 ‘관념’에 두었다. 사실상 우리의 입장에서는 ‘관찰과 관념’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다. 왜냐하면 지식의 근원으로서 ‘관찰과 관념’은 사실상 지식의 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로의 입장에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름으로 구별하여 하나의 명제에 대한 이해도 다르게 설명하였다. 이렇게 하나의 명제도 해석의 입장이 서로 다른데 여러 상황과 현실, 그리고 입장이 복합적으로 엉겨 발생되는 우리의 현실의 문제를 쉽게 판별하고 더욱이 성경적으로 바르게 처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총회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고 바르게 처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깊이 문화 현상에 대해서 개혁신학적인 숙고가 깊어져야 하는 총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이 신학적 숙고가 없다. 그래서 ‘총회장 기록관 설립’을 하자는 청원이 돌고, ‘총회 중독상담대책위원회’를 설치하자는 헌의도 있다. 총회장은 총회의 회의를 사회 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총회장의 기록관을 설립하자고 하면 되겠는가? 사람 중심이다. 결국 이러한 일을 하게 되면 사람이 우상이 되는 교단이 되기 쉽다.

또한 총회중독상담대책위원회가 뭔가? 이 대책위 설립을 헌의하는 것은 현 사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약물중독, 문화중독에 대한 상담치료를 총회가 전문적으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그렇다면 대책위의 명칭도 신학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어느 총회 때부터 총회의 ‘주제’가 등장했다. 주제가 있어 모여지는 회의는 회의가 아닌 세미나나 심포지엄이다. 총회는 주제를 가지고 모여 회의하는 회의가 아니다. 장로교회의 최고 치리회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총회는 기로에 서 있다. 지금 우리 신앙의 패러다임과 신학의 패러다임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양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양식과는 괴리가 있다. 그것은 우리들 속에 있는 가치와 집합적인 욕구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도 아니하면서 교회라고 성도라고 특별한 위치와 대접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결의는 신중해야 하고 또 우리가 결의한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지키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신뢰상실은 사실상 우리의 결의와 치리가 신학적 공공성과 사회적·실천적 공공성을 배제하고 오직 정치적 선택에 의해서 결의하고, 처리하였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신학을 교회를 통해 세워가지 못하게 되는 현실에 직면할 것이다.

금번 총회와 총대는 요식행위의 회의를 하지 말고, 우리는 누구를 믿고, 무엇을 추구하며, 누구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가를 드러내는 총회가 되자. 교회를, 미래를 생각하고 주님 다시 오심에 대한 준비를 하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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