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은 목사의 독서대학]

나에게는 자녀 둘이 있다. 아내 나이 40에 둘째가 태어났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다. 아내는 50이 되어 늦둥이를 키우려니 조금 힘에 부쳐한다. 게다가 딸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 중이다. 하루 온 종일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둘째는 활동적인데다가 성격도 만만치 않다.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인생을 살며 소비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가끔 이야기 하곤 한다. “사랑이(둘째)는 평생 쓸 수 있는 떼, 지랄을 미리 당겨 한꺼번에 쓰는 것 같다. 청소년기나 청년, 성인이 되어서는 쓸 지랄이 없어 엄마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현숙한 여인으로 살아 갈 거다.”

우스갯소리일 수 있지만 ‘지랄’에만 총량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지혜에도 총량은 존재한다. 지랄의 총량은 속히 소진하면 좋으나 지혜의 총량은 그래서는 안 된다. 지혜는 자신에게는 물론이요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관계에 있어 미성숙함은 지혜부족의 결과다.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 미성숙함은 상대에게 ‘지랄’처럼 여겨질 수 있다.

목사는 지혜자여야 한다. 목회는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최 일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사역을 통해 누군가의 생명이 오가고, 행불행이 결정될 수 있다. 가르치는 자리, 목회의 자리는 연습의 자리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 ‘그때는 내가 준비가 덜 되었었지’라고 추억의 한 장면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 직임이 결코 아니다. 야고보는 말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새벽예배를 마치고 아침을 먹기 전은 어느 때보다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다. 성남 지역의 목사·사모가 함께하는 조찬 독서모임.
새벽예배를 마치고 아침을 먹기 전은 어느 때보다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다. 성남 지역의 목사·사모가 함께하는 조찬 독서모임.

그래서 목사는 배움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고, 인간에 대해 배워야 한다. 잠시잠깐의 배움이 아니다. 평생 학습자, 연구자로 살아가야 할 사명자의 평생 과제다. 정보와 지식을 누구보다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언어가 흐르는 곳에 늘 거해야 한다. 독서는 흐르는 언어의 강물, 생각의 강물에 자신을 띄우는 과정이다. 독서과정을 통해 수많은 생각의 물줄기를 만나게 되고 흐르는 언어의 물줄기는 지혜자로 살아갈 마중물이 되어준다.

바울은 이야기 한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연구독서는 진리와 이치와 원리를 초기값으로 하나님-세계-인간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목사는 그 과정을 통해 지혜의 총량도 점점 확장시켜 가는 존재여야 한다.

하나님! 나로 지혜자 되게 하소서! 좋은 것과 중요한 것과 먼저 할 것을 알고 준비하며 실행하는 존재되게 하소서.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목사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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