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

1. 택함 받은 백성의 총수(總數)로 구성된 비가시적 교회   

비가시적인 보편적 혹은 우주적 교회는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에 모여 하나가 되는, 존재해 왔고 존재하며 존재할 택함 받은 자들의 총수로 구성되는바, 만유 안에 만유를 채우는 그의 신부, , 충만함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고,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며 교회의 머리라고 하는 주장은 사실상 근거가 없어 비성경적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침탈이다.”(25.1, 6)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회’(evkklesi,a, ecclesia)는 어원에 비추어 볼 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골 1:2, 24)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정하사(豫定) 택하신(選擇) 자들을 부르셔서(召命) 교회를 세우신다(엡 1:4~5, 벧전 2:9, 5:10, 롬 8:28~30). 그리스도는 흠 없는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 단번에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모든 의를 다 이루시고 죄를 없이 하셨으니(히 9:14, 26, 28, 10:10, 12, 마 3:15, 요 19:30). 그 의의 전가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고 온전하게 된 자들의 모임이 교회이다(롬 4:6, 5:19, 히 10:14). 그리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4:12), 그리스도를 ‘몸의 구주’라고 칭한다(엡 5:23).

예수는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자기 몸을, 주신 바(엡 5:25, 갈 1:4, 히 10:10)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행 2:36, 3:15).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아들이 되신 오직 한 사람으로서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니(갈 3:16, 딤전 2:5), 주도 한 분이시며(엡 2:5), 교회도 하나이다. 그러므로 한 몸 된 부부를 나눌 수 없을진대, 교회는 더더욱 나눌 수 없다(엡 5:31~32, 마 19:6).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caput, head)로 삼는(엡 1:22, 골 1:18) 지체들(membra, members)의 연합체(societas, society)로서, 한 분 성령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한 몸(corpus, body)을 이룬다(고전 12:27, 엡 4:4, 5:30). 교회의 유일성(唯一性, unitas, unity)이 여기에 있다.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이니, 몸 된 교회를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를 나누는 것이다(고전 12:12, 20).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의 충만함이다(엡 1:23).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는 모든 민족과 열방에 미친다. 더 이상 이스라엘과 이방을 가르는 중간에 막힌 담이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둘을 한 몸이 되게 했다(엡 2:14, 16, 19). 더 이상 혈통이나 지역으로 인하여 외인이나 나그네 된 자가 없고 누구든지 부르심을 받기만 하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요 권속이 된다(엡 2:19, 고전 1:24, 롬 8:17). 이는 육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바,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난 자는 부르심을 받는다(요 1:13, 고전 1:26). 교회는 부르심을 입은 자의 영원한 기업이다(히 9:15). 하나님 외에는 부르심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 알 자가 아무도 없으므로, 복음이 땅 끝까지(행 1:8), 모든 민족에게(마 28:19) 언제나, 즉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딤후 4:2, 겔 2:5) 선포되어야 하듯이 교회도 모든 때(everytime), 모든 곳(everywhere)에 모든 이(everyone)를 위하여 세워져야 한다.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as, catholicity) 혹은 우주성(universalitas, universality)이 여기에 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한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함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된다(엡 2:18, 22, 엡 4:4). 그리스도는 비가시적 교회(ecclesia invisibilis, the invisible church)와 가시적 교회(ecclesia visibilis, the visible church)의 머리이시다. 비가시적 교회는 택함 받은 자들의 총수로 구성됨으로 시간과 공간에 제한됨이 없고 증감(增減)도 없으며, 주님이 아시는 자들에 대한 인침이 있을 뿐이다(딤후 2:19, 엡 1:13, 요 10:14). 비가시적 교회가 불변함은 그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다(히 13:8).

교회를 가시적 기구로만 이해하고 비가시적 교회를 부인하는 로마 가톨릭은 사제중보주의에 빠져서, 교황의 수위권(首位權, primatus, primacy)을 운운하며 바티칸의 대사제를 교회의 머리로 여기는 비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유일하신 중보자 그리스도이시다(마 23:10, 딤전 2:5).

2. 가시적 교회의 요소와 특성

또한 복음 아래서 보편적인 즉 우주적인 가시적 교회는 이전 율법 아래서처럼 한 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참 종교를 고백하는 세계 전역의 모든 자들과 그들의 자손들로 구성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집과 가족이니, 이를 떠나서는 구원의 통상적 가능성이 없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이생에 있어서 세상 끝까지 모으시고 완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역(교역자들의 직제), 말씀, 규례를 이 보편적 가시적 교회에 주시고, 자신의 약속에 따라 자신의 현존과 영으로 소기의 효과를 내도록 하셨다.”(25.2~3)

가시적 교회는 시공(時空)에 존재하는 지상의 교회로서 신앙고백, 예배, 성례, 말씀, 기도, 직분, 성도의 교제 등을 주요한 요소들로 삼는다. 가시적 교회는 여러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다는 점에서 비가시적 교회와 다름없이 유일하고 보편적이다. 가시적 교회는 역사상 존재하는 교회로서, 구약 시대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계대를 잇는 한 민족에 국한되었으나(창 17:7),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이면 모든 먼 데 사람, 모든 열방이 그리스도를 믿어 그 지체가 되었다(행 2:39, 16:31, 롬 15:9~12).

하나님의 교회는(고후 1:1, 갈 1:13, 살전 2:14, 딤전 3:15)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집(벧엘)이며(창 28:19, 사 56:7, 렘 31:1)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이다(골 1:13).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들의 유업이며(롬 8:9, 15, 17; 막 14:36, 갈 3:29), 그 자녀들 각각이 하나님의 성전이자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교회를 이룬다(히 3:6, 고전 3:16, 벧전 2:5). 구약의 할례가 육체의 포피를 벰으로써 언약 백성의 표징을 삼았다면(창 17:9~14), 신약의 세례는 물의 씻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중생(重生)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는 입교(入敎)의 표징을 삼았다(롬 6:3~4, 골 2:12, 고전 12:13).

칼빈이 교부들을 인용하며 말했듯이 ‘하나님 자신이 아버지가 되시는 어떤 사람에게든 진실로 교회는 어머니가 된다’(<기독교 강요>, 4.1.1). 교회의 본질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지체들의 한 몸 됨에 있다면, 교회의 당위는 그 지체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자라감에 있다(엡 4:15). 성도는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자란다(롬 10:17, 사 59:2). 교회는 주중 6일 동안은 가르치고, 주일에는 선포해야 한다. 교회의 모든 직분과 은사는 ‘가르치는 교회’(ecclesia docens, the teaching church)와 ‘선포하는 교회’(ecclesia praedicens, the preaching church)의 역할을 다함에 본분이 있다. 종교개혁의 교회론적 동기가 여기에 있었다.

3. 가시적 교회의 순수함과 혼합 교회

이 보편적 교회는 어떤 때는 더 어떤 때는 덜 가시적이게 존재해왔다. 그것의 지체들인 개별 교회들은 복음의 교리가 가르쳐지고 수용되고, 규율이 거행되며, 공적 예배가 그것들 가운데 더 혹은 덜 순수하게 드려짐에 따라 더 혹은 덜 순수하다. 하늘 아래에 가장 순수한 교회들이라고 해도 혼합과 오류 모두에 복속된다. 어떤 것들은 너무나 타락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아니라 사탄의 회집들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를 예배하는 교회가 항상 있을 것이다.”(25.4~5)

이 땅의 교회에는 오류가 없지 않다. 완전한 성도가 없듯이 완전한 교회도 없다. 그러므로 성도가 날마다 거룩해져 가야 하듯이,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 가고 있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 The reformed church should be always being reformed.). 어거스틴이 말했듯이 ‘밖에도 양이 많고 안에도 이리가 많다.’ 가시적 교회 안에도 비가시적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가시적 교회 밖에도 비가시적 교회에 속한 사람이 있다. 좋은 씨와 가라지가 섞여 있고 좋은 물고기와 그른 물고기가 섞여 있다고 해서(마 13:24~30, 47~48) 교회가 거짓되다고 할 것은 아닌 바,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가 합법적으로 거행되며, 권징이 합당하게 시행되는 한 참되다고 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비밀로서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릿돌이 되심을 드러내는 표지(標識)들(notae, notes)이 된다(골 2:2~3, 시 118:22, 마 21:42, 행 4:11, 벧전 2:7).


※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