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결혼은 창조 규례, ‘주 안에서’ 한 몸되는 것이 복되다

1. 결혼을 거룩하고 복되게 제정하심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어떤 남자가 동시에 둘 이상의 아내를 가지거나 어떤 여자가 동시에 둘 이상의 남편을 가지는 것은 불법이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의 상호 도움을 위하여, 합법적인 자손으로 인한 인류의 증가와 거룩한 씨로 인한 교회의 증가를 위하여, 그리고 부정(不淨)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24.1~2)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결혼은 창조의 규례로서 하나님이 수립하신 제도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으며,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이른바 문화명령(文化命令)을 내리셨다(창 26:26~28). 그리고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셔서 그들이 그곳을 거처로 삼게 하셨고(창 2:8), 그들이 부부로서 하나가 되어 그 복을 누리고 그 명령을 수행하도록 이른바 가정명령(家庭命令)을 더하셨다(막 10:6~9).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19:5, 5:31).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9:6).

이는 칼빈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말했듯이 ‘나누거나 뗄 수 없는 결혼의 연합을 규율하는 확실한 법’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합법적 결혼을 통하여 인류를 번성하게 하시고 그들을 보이는 손으로 사용하셔서 자신의 보이지 않는 뜻을 이루시는 데 있다. 결혼이 거룩하고 복된 것은 남녀를 부부로 짝지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부부의 결합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올바른 지식에 따라야 하며, 하나님은 정숙과 순결을 사랑하심으로 무절제하고 방종한 육욕에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벧전 3:7). 결혼 외의 남녀의 동서(同棲)는 그 어떤 경우든 불법이며, 하나님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결혼을 통하여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고 자녀를 두며 가족을 구성한다. 부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녀가 존재할 수 없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일진대(엡 6:2), 그 전제가 되는 것이 결혼의 계명이다. 부부는 서로 한 몸이기 때문에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자신을 사랑함 같이 해야 하며, 서로 순종하며, 서로 공경하며, 서로 의무를 다하며, 서로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한다(엡 5:28~33, 골 3:18~19, 고전 7:3~4, 벧전 3:1~6, 창 1:28).

부부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서(벧전 3:7) 하나님의 가족(familia Dei, God’s family)을 이루고 ‘경건한 자손’을 얻는다(말 2:15). 주 안에서 한 몸 된 부부를 통하여 교회의 지체의 수가 증가된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게 하셨다(창 9:1). 아브라함과 사라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와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는 언약의 은혜를 누렸다(창 17:5, 16). 그들의 결혼으로 허다한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생육했으며 그들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다(히 11:12, 창 22:17~18). 그들이 한 사람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교회의 지체들로서 한 몸을 이루었다. 이 비밀이 크듯이, 사람이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육체가 됨의 비밀 또한 크다(갈 3:16, 딤전 2:5, 엡 5:29~32).

2. 주 안에서의 결혼   

판단력을 지니고 자기의 동의를 표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람은 결혼하는 것이 합법적이다. 그렇지만 주 안에서 결혼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개혁된 참 종교를 고백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이나 로마 가톨릭주의자들이나 다른 우상숭배자들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경건한 자들은 삶이 악명 높게 사악하거나 정죄 받아야 할 이단을 주장하는 자들과 결혼함으로써 적절치 않은 멍에를 메서는 안 된다. 결코 결혼은 말씀에서 금지된 친족이나 인척의 친등(親等) 내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러한 근친혼은 사람의 어떤 법이나 쌍방의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도무지 성사될 수 없으니, 그런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로서 함께 살 수 없다.”(24.3~4)

결혼은 거룩하고 복되다. 하나님이 그 제정자가 되신다(잠 18:22, 19:14).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겨야 한다(히 13:4). 타고난 은사가 있다면 결혼하지 않고 동정(童貞)을 지키는 것이 좋으나, 절제할 수 없어 고통 가운데 몸부림친다면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이 좋다(마 19:10~12, 고전 7:2, 9).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일신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주의 일을 염려하고 주를 섬기기 위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전 7:32, 35).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나 결혼하는 것도 잘하는 것일 경우에는 ‘주 안에서만’ 결혼해야 한다(고전 7:39).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결혼을 기뻐하셨으므로, 이스마엘이 하갈에게서 먼저 났지만 사라에게서 나중에 난 이삭과 그 후손에게 언약의 복을 베푸셨다(창 17:19~22). 하나님은 이삭에게 아내로 주신 리브가가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창 24:60).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딸들과 결혼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창 34:14, 출 34:16, 왕상 11:4; 느 13:25~27). 오늘날 하나님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을 금하신다(고후 6:14). 그렇지만 부부 중 어느 한편이 믿는다고 해서 믿지 않는 다른 편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이는 그 한편으로 인하여 그 다른 편이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며, 구원에 이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 7:12~16).

거룩하신 하나님은 만민 중에 구별하여 자기의 소유로 삼으신 백성과 그 후손이 거룩하길 바라시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신다(레 20:7~8, 26, 벧전 2:9). 참된 결혼은 여호와의 계심과 어떠하심과 뜻을 아는 참된 지식에 따라야 하며 본성의 가르침에 배치되지 않아야 한다(벧전 3:7, 고전 11:14). 거짓 신을 섬기는 자들이나 불신자들을 비롯하여 하나님을 자기들이 만든 것에 가두는 우상숭배자들, 거짓 가르침에 사로잡혀 진리를 배척하는 이단들, 자의적 숭배에 빠진 로마 가톨릭주의자들과 결혼하는 것은 금지된다. 하나님은 가족이나 근친과의 동침, 동성(同性)과의 동침, 수간(獸姦) 등 가증스런 풍습들을 엄히 징벌하신다(레 18:6~18, 20:11~21, 22:19, 막 6:18, 롬 1:27, 고전 5:1). 하나님은 순리(順理)로 쓸 것을 역리(逆理)로 쓰는 자에게 상당한 보응을 가하신다(롬 1:26~27).

3. 한 몸을 깨뜨리는 이혼   

약혼 후에 범한 간음이나 사통이 결혼 전에 발각되면 순결한 편에서 그 약혼을 공정하게 해소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 결혼 이후에 간음을 한 경우에는 순결한 편에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범법한 편을 마치 죽은 자처럼 여겨 이혼 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합법적이다. 사람의 부패가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님이 결혼으로 결합시킨 자들을 부당하게 단절시키려고 궁리하는 데 열의를 쏟는 경향이 있을 정도이나, 설혹 그렇다 치더라도 간음 외에는 결혼의 유대를 해소할 만큼 충분한 원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혼 절차에 있어서는 공적이고 질서 있는 과정이 준수되어야 한다. 그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사건에 있어서 자신들의 뜻과 재량에 방임되지 않는다.”(24.5~6)

순결의 의무는 결혼한 남녀는 물론 약혼한 남녀에게도 요구된다(신 22:23~24). 하나님이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마 19:6, 막 10:9).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 무엇보다 더 밀접하다고 하나, 그 긴밀함이 부부의 한 몸 됨에는 미치지 못한다. 부부의 연합체(societas, society)를 깨뜨리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유기하거나 자식이 부모를 유기하는 것보다 더 극한 패륜(悖倫)이다.

하나님이 구약 백성에게 이혼 증서를 주고 아내를 내보내는 것을 허용하신 것은 그들의 완악함이 너무나 지나쳐 그 수준에서나마 언약 가정의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셨기 때문이었는데(신 24:1~4, 마 19:7~8, 막 10:3~5), 사악한 자들은 이를 구실로 삼아 현숙한 아내를 내쫓고 간부(姦婦)를 들이고자 하였다(시 50:1). 이런 현실을 아시고 주님은 음행한 연고 없이 이혼하는 것은 음행을 조장하게 된다고 지적하셨다(마 5:31~32, 19:9, 막 10:11~12). 음란한 몸은 마치 종기와 같아서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없으므로 잘라내야 마땅하지만, 음행에 대한 판단은 어느 일방에 자의적으로 맡겨져서는 안 된다. 결혼의 증인은 하나님이시다(말 2:14).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말 2:16). 부부는 통상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것 이상으로 용서해야 하며(마 18:22), 통상 허다한 죄를 덮는 이상으로 사랑해야 한다(벧전 4:8). 그 어떤 경우도 이에 대한 절대적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음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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