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곡의 동요 소개 … “곡조가 있는 소통 도구로 교회서 다시 불러야”

<한 줄도 좋다, 그 동요> (노경실/테오리아)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꼬리치고 반갑다고 멍멍멍. 동요 <강아지>의 노랫말을 읊은 작가는 자신이 어릴 적 길렀던 ‘홍일이’, ‘봉칠이’, ‘녹번이’, ‘합정이’, ‘행당이’를 떠올리며 강아지들과 함께했던 그 시절의 추억에 잠긴다. 짧은 한 줄의 가사에 흐릿해져 있던 한 사람의 인생이 줄줄이 따라온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불렀던 동요가 가진 힘이다. <상계동 아이들>, <복실이네 가족사진> 등 따뜻한 동화를 써온 노경실 작가가 바로 이 힘에 주목했다.

노 작가는 최근 출간한 에세이 <한 줄도 좋다, 그 동요>에서 우리가 잊은 동요를 추억하고 함께 잊어버린 어린 시절도 되살렸다. 책에서는 25곡의 동요를 소개하며 노랫말이 떠올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유년기에 불렀던 동요 가사 한 줄 한 줄을 추억하면서 그 추억의 힘으로 오늘의 슬픔과 고됨을 견뎌보자고 어른이 된 우리를 격려한다. 왜 어른들이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를 추억할 필요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때로 살아가기 지칠 때 동요는 ‘힘(Hymn, 찬송가)’처럼 우리에게 ‘힘(power)’을 줄 것”이라고 답한다.

작가는 또한 이 책에서 동요를 부르는 과정 없이 곧바로 어른의 감정을 노래하는 요즘의 아이들을 향해 “우리 같이 동요를 부르자!”고 제안하며, 친구들과 사귀는 법도 화해하는 감정도 모른 채 죽느니 사느니 하는 이별과 애정의 질곡을 노래하게 만든 이 시대를 꼬집는다. 동요 <달>에서는 도시의 불빛과 스마트폰의 빛으로 아이들이 달과 별을 찾지 않는 현실을, <새 신>에서는 새 신을 신었다고 방안에서 뛰면 혼날까봐 아예 뛸 생각도 하지 않게 된 오늘날의 모습을 지적한다.

소망의 노래 ‘동요’ 다시 부르자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것이 아이들의 노래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누렁 강아지와 빛나는 달과 별, 하얀 눈 모두 동요의 소재가 됐다. 버스나 전차를 제대로 타보지 못 한 아이들이 <비행기>를 부르며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과 세상의 여러 존재가 적이 되고 말았다. 강아지들과 같이 뛰어놀던 동요 속 눈 오는 풍경은 그저 사진 찍어 분위기 내는 데 이용된 지 오래다.

동화작가 노경실이 에세이 &lt;한 줄도 좋다, 그 동요&gt;를 펴냈다.
동화작가 노경실이 에세이 &lt;한 줄도 좋다, 그 동요&gt;를 펴냈다.

“대다수의 동요가 가장 배고프고 가장 치욕적인 일제강점기나 해방과 전쟁 후 힘든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어요. 그럼에도 아이들은 고픈 배를 물로 채우면서 동요를 불렀던 거예요. 일 나간 엄마 아빠를 기다리느라 울면서도 동요를 불렀고, 전쟁 뒤의 피폐한 거리와 골목에서도 구멍 난 신발을 신고 달리면서 노래를 불렀죠. 그러나 모든 것이 풍요로워진 지금은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도 활발하게 만들어지지 않고, 아이들도 부르지 않고 있어 안타까워요.”

노 작가는 다시 동요가 불리는 데 교회의 역할을 기대했다. 동요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에 의해 창작됐을 뿐만 아니라, 동요가 시작되고 퍼진 곳이 바로 교회였기 때문이다. 어린이 음악은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학교에서 시작됐고, 기독교인 음악가들은 어른들의 찬송가, 유행가와 구분되는 어린이들의 정서를 반영한 어린이 찬송가와 동요를 창작했다. 또 어린이 성가대는 어린이 찬송가와 동요를 함께 부르며 확산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예술인들이 어린이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는데 지금은 기독 문화와 일반 문화가 분리돼 있어요. 교회가 다시 한 번 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현대인들의 문제점 중 하나가 대화와 소통이 적다는 것인데 찬송을 곡조가 있는 기도라고 하듯이 동요가 곡조가 있는 대화와 소통의 도구로서 교회 안팎에서 많이 불렸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마음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요즘 세상에 동요를 부름으로써 위로를 주고받고 즐거움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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