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대구에 오셔서 오목조목 골목길들의 정취를 꼭 느껴보시라. 사진은 대구근대골목 2코스와 반지길 등이 시작되는 청라언덕 옆의 3·1운동길.
대구에 오셔서 오목조목 골목길들의 정취를 꼭 느껴보시라. 사진은 대구근대골목 2코스와 반지길 등이 시작되는 청라언덕 옆의 3·1운동길.

대구읍성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도, 대구는 여전히 읍성 내부를 중심으로 개발되었다. 구도심(old town)과 신도심(new town) 사이의 지역적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곳이 바로 대구이다.
물론 계속되는 개발로 근대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다른 도시들에 비해 100년 전의 모습, 특히 대구 선교가 시작되었던 시대의 모습을 비교적 많이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 주변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겨운 골목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품은 채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대구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가진 도시다. 1907년 2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곳도 대구였다. 대한제국이 일제로부터 강제로 빌려야 했던 차관 1300만원(당시 대한제국의 1년 세입이 600만원이었다)을 국민의 힘으로 갚으려고 시작한 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세계 최초의 여성운동이 시작된 곳도 대구였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인데, 이는 1908년 미국에서 벌어진 최초의 여성운동인 의류노동자들의 시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대구의 여성운동은 이것보다 1년이 빠르다. 1907년 대구의 여성들은 패물폐지부인회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국채보상운동에 주체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흔적들은 청라언덕에서 시작해서 3·1운동길, 이상정 고택,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종로와 진골목에 이르는 ‘반지길’을 걸으면서 확인할 수 있다. 반지길은 국채보상운동 때에 대구의 여성들이 자신의 반지를 비롯한 패물들을 내어놓은 것에 착안해서 조성한 원형코스의 골목이다. 이 길에는 이상화 시인의 형인 독립운동가 이상정의 고택이 있다. 이 고택에는 이상정의 부인이며, 해방 이후 공군 창설에 기여해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로 불렸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의 자취가 깃들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길, 대구 초기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을 느낄 수 있는 근대골목 2코스를 따라 걷는 것도 재미있다. 동성로에 있는 국채보상공원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20회에 걸친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가 나에게는 큰 숙제였는데, 이 숙제를 다 해내게 된 데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글감들에 많은 힌트를 주신 달서교회 박창식 목사님, 문화해설사인 동신교회 홍수자 권사님, 그리고 한결같은 격려를 보내주신 범어교회 장영일 목사님과 8년째 함께 책을 읽고 나누고 있는 뒷북 형제교회(동산 남부 반야월북부 원일 북성 참좋은교회) 목사님들께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신 <기독신문> 독자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독자들이 오목조목 대구골목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길을 한 번 걸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나름 할 일을 했다는 위로를 얻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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