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번역과 신학 해설 및 신앙 적용] (23)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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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신문
  • 승인 2020.07.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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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유는 하나님의 절대 진리 가운데 거룩해지는 것

1. 사랑: 자유자의 멍에 

그리스도가 복음 아래에 있는 신자들을 위하여 값을 치르고 사신 자유는 죄의 책임, 하나님의 정죄하시는 진노, 도덕법의 저주로부터의 해방에 있고, 이 현세의 악한 세상, 사탄의 속박, 죄의 지배, 그리고 고통의 악, 사망이 쏘는 것, 무덤의 승리, 영원한 저주로부터의 구출에 있으며,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가는 것, 그들이 노예적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아이와 같은 사랑과 기꺼운 마음에서 그에게 순종하는 것에 있다. 이 모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신자들에게도 공통되었다. 그러나 신약 아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는 한층 더 확대되었으니, 그들이 유대 교회가 복속되었던 의식법의 멍에로부터 풀려난 것, 은혜의 보좌에 접근함에 있어서 가진 더욱 큰 담대함, 율법 아래서 신자들이 통상적으로 동참하였던 것보다 더욱 충만하게 하나님의 자유로운 영과 교통한 것에 있어서 그러하였다.(20.1)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칼빈이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교리는 ‘칭의의 부록’과 같다(<기독교 강요>, 3.19.1). 그 자유는 단지 죄에서 벗어나는 데 그치지 아니하고, 주님의 멍에를 메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데까지 미친다(마 11:28~30, 16:24). 성도에게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선물로 주어진다(갈 5:6, 엡 2:8).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빚을 다 갚으셨다. 이제 우리가 빚진 자가 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으로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롬 1:14; 8:12~13).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뜻을 다한 순종’(willing obedience to God’s will revealed in the law)으로 집약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롬 8:14~1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나 ‘두려움’이 없다(롬 8:1, 요일 4:18). 더 이상 우리는 초등학문 아래서 종 노릇 하지 않는다(갈 4:3). 우리는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롬 6:14). 더이상 우리에게는 율법이 죄의 권능으로 작용하지 않고 죄의 쏘는 것인 사망이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고전 15:56).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골 1:13).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악한 세대’에서, ‘하나님의 장래의 노하심’에서 건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골 1:13, 딤전 2:6, 살전 1:10), ‘은혜에 들어감’과 ‘아버지께 나아감’과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었다(롬 5:2, 엡 2:18, 히 10:19). 그리하여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며(히 4:16),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는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게 되었다(딛 2:14).

신약시대는 은혜가 더한 만큼 자유도 더하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고후 3:17). 그 영의 역사로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듯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의 영광을 보게 되며(요 1:14), 주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후 3:18). 그리스도의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롬 8:32).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참 자유가 주어진다(롬 10:17, 마 17:5). “저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자유롭게 하시는 분은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외에는 없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그리스도께 접붙임이 되어 그와 한 몸으로 영생을 누리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죽게 되고, 죽음에는 자유가 없다. 생명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고, 자유가 있는 곳에 생명의 열매가 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된 자는 하갈의 소생이 아니라 사라의 소생으로서,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의 계보에, 육체의 씨가 아니라 언약의 씨에 속하며, 육적 할례가 아니라 영적 할례, 즉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고 육의 몸을 벗게 된다(갈 4:21~31; 골 2:11). 그 자유가 주어졌으니 다시는 우리가 종의 멍에를 메어서는 안 된다(갈 5:1).

2. 거듭난 자의 거듭난 양심

오직 하나님만이 양심의 주이시며, 자기의 말씀에 배치되거나 믿음과 예배의 사안에 있어서 자기의 말씀을 넘어서는, 사람들의 교리들과 계명들로부터 양심을 자유롭게 두셨다. 그러므로 그런 교리들을 믿는 것이나 양심을 벗어나 그런 계명들에 순종하는 것은 양심의 참 자유를 저버리는 것이며, 맹목적인 믿음과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파괴하며 이성의 자유 또한 파괴한다.”(20.2)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행 4:19)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 자유의 열매를 맺게 된다(행 5:29). 참 자유는 하나님의 절대 진리에 서서 그 진리 가운데 거룩해지는 데 있다(요 17: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엡 5:10). 하나님은 양심을 주셔서 우리가 그 소리를 듣게 하셨다.

양심은 하나님이 우리 속에 세우신 천 명의 증인과 같다. 하나님의 법정이 우리 안에 있다. 양심은 이성과 의지를 연결시키는 고리이다. 알고 행함 사이에 양심이 자리한다.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의적인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골 2:23).

‘양심’(conscientia, conscience)은 어원상 ‘지식’(scientia, science)을 ‘모음’(con, with)이라는 뜻이다.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스스로 정죄하거나(롬 14:22) ‘사람의 가르침과 명령’에 얽매여 ‘사람들의 종’이 되는 맹목적인 순종은 우상숭배에 다름 아니다(골 2:22, 고전 7:23). 세상 논리에 빠져 주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 주님을 죽여야 이스라엘이 산다고 선동한 대제사장 가야바, 주님을 무리에게 내주고 손을 씻은 본디오 빌라도, 이들은 모두 양심에 화인을 맞아 거짓말을 한 자들이다(딤전 4:2). 거듭난 성도에게는 그 속에 거듭난 양심이 자리한다. 그리하여 의에 대하여는 얽매이나, 죄에 대하여 자유하게 된다. 즉 ‘죄의 종’이 ‘의의 종’으로 변한다(롬 6:15~23).

3. 그리스도의 법을 이룸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구실로 어떤 죄를 저지르거나 어떤 욕망을 품는 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목적을 파괴한다. 이 목적은 우리가 적들의 손에서 구출되어 생의 모든 날 동안 두려움 없이, 주님 앞에서 거룩함과 의를 지니고,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데 있다. 하나님이 자기가 임명하신 권세와 그리스도가 값을 치르고 사신 자유를 통하여 의도하시는 것은 파괴하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지지하고 보존하라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구실로 어떤 합법적인 권세나 그 권세의 합법적인 실행을, 그것이 국가적이거나 교회적이거나 간에, 반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게 된다. 그들이 그러한 의견들을 표명하는 것이나 그러한 행사들을 주장하는 것은 혹은 본성의 빛에, 혹은 믿음이나 예배나 소통 등 기독교의 알려진 원리들에, 혹은 경건의 능력에 배치된다. 혹은 잘못된 의견들이나 행사들은, 그것들 자체의 본성에 있어서나 그것들을 표명하거나 주장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교회에 수립하신 외적 화평과 질서에 파괴적이다. 그것들은 교회의 책벌과 국가 위정자의 권세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소환되고 고소될 수 있을 것이다.”(20.3~4)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법정적이며 신분적으로 주어지는 은혜이다.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는 것이 그 자유이다(갈 3:29, 롬 1:1, 8:9, 엡 1:1). 이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자 함에 있다(갈 3:27). 성도는 혈통이나 육신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고, 하나가 되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잇는 상속자가 된다(요 1:13, 갈 3:28~29). 참 자유는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데 있다(갈 6:2). 우리는 이 자유를 악을 가리는 데 쓰거나 육체의 기회를 삼는 데 쓰면 안 된다(벧전 2:16, 갈 5:13).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 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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