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제105회 총회 총회준비위원회가 발족이 되었다. 슬로건을 ‘세움’으로 정했다. 한국교회는 언제부턴가 문화 막시즘의 공격을 받으며 중심그룹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면서 마이너리티가 되어가고 예배에 있어서는 반토막이 나 버렸다. 한국교회를 세울 마지막 골든타임마저 놓쳐 버릴까봐 제105회 총회 슬로건을 ‘세움’으로 한 것이다.

총회를 세우려면 먼저 교회를 세워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가장 큰 동력은 생명력이다.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강단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설교는 해돈 로빈스의 강해설교, 명제설교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목회자의 품격의 언어와 우아한 행위를 통해서 고상하신 하나님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이런 설교학이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강단을 지배해왔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설교가 정형화되기 시작했고 정형화를 넘어서 화석화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조금씩 이탈하기 시작한 설교 형태가 있다. <설교에 관하여>를 쓴 조엘 비키가 말한 대로 솜사탕 설교, 지성 위주의 설교이다. 솜사탕 설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지성 위주의 설교는 사람을 우쭐하게 한다.

조엘 비키는 두 설교 형태를 비판하며 설교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감정이 설교자의 감정을 지배하고 움직여서 청중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돌프 보렌은 설교 행위를 성령과 함께 춤을 추고 놀이하는 것으로 표현했고, 루돌프 오토 역시 설교 행위를 설교자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청중을 향하여 춤추는 행위라고 하였다. 이것을 요한 실리에는 광대설교라고 표현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설교를 우아하고 품격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복음을 전할 때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어리석음과 역설적인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전 4:9~10) 특별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설교자가 우아하게 전한다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겠는가. 현장예배가 되었든, 온라인예배가 되었든 간에 본문에 담긴 하나님의 아픔, 애절함을 설교자가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하나님의 애절하고 아픈 마음이 설교자의 감정을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그 설교를 통하여 청중에게 생명력이 전달이 되고 그 생명력은 청중을 감동시키며 화석화되고 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마음들을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설교자가 성언운반(聖言運搬) 개념을 넘어서 본문을 통해서 나타난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아픈 감정이 설교자의 감정을 통하여 전달되어야 한다. 흔히 설교 내용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중심이 되면 하나님 중심적 설교,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라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 애달픈 감정이 설교자를 통해서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청중의 마음이 움직이고 변화되기 때문이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교회가 반토막 난 상태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감동된 설교자의 에토스와 파토스를 통하여 생명력 있는 설교가 전달되어야 한다. 그 생명력으로 우리는 교회를 세우고 총회를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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