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찬 목사 (대구 동산교회)

박영찬 목사 (대구 동산교회)
박영찬 목사 (대구 동산교회)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던 엘라 골짜기의 골리앗을 신천동에서 만난 것은 담임목사로 부임한 지 며칠 뒤였습니다. 언제나 그는 굉음을 내는 낡은 오토바이에 팔공산 막걸리 배달박스를 가득 싣고 나타났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놋투구 대신에 공사장 인부들이 쓰는 안전모가 어설프게 매달려 흔들거렸고, 다부진 어깨에는 비늘 갑옷 대신에 빛바랜 국방색 야전점퍼가 서걱거렸습니다. 놋각반 대신에 신은 군화는 특수제작이라도 한 것처럼 유난히 크고 무거워보였습니다. 사십 일이 아니라 무려 십여 년째 계속되는 그의 끈질긴 출현이 우리에게는 집요한 고통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공포의 입술이었습니다. 거친 말과 심한 욕설을 얼마나 유창하게 내뱉던지 교인들 중에 감히 나가서 싸워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불경소리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집은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 바로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일 아침에 자기 집 지붕에 올라가서 회심의 미소와 함께 미사일 발사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면 경쾌한 목탁소리와 함께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이 교회마당에 명중했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양을 부르다가 폭격을 당한 교인들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짐작 가실 겁니다.

그 골리앗과의 싸움 결과가 궁금하시지요? 35살의 햇병아리 담임목사가 던진 복음의 물맷돌 한방에 쓰러져서 지금은 교회의 충성된 일꾼이 되었다면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지루한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부지에 새 성전을 건축하면서 그의 미사일 사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몇 년 후,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집안에 가톨릭 신부가 두 명이나 있어서 원래부터 교회에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밑으로 이사 온 날부터 어른들뿐만 아니라 주일학교 아이들까지도 자기를 향하여 ‘술배달’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싫고 화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쓰러뜨려야 할 골리앗은 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 처마 밑에 이사 온 이웃에게 조차도 따스한 사랑을 베풀지 못한 채, 열심히 정죄의 돌을 던졌던 우리의 오만과 편견이 바로 우리가 쓰러뜨려야 할 타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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