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요즈음은 신발을 사는 일이 어렵지 않다. 대형마트나 신발매장에 가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기성품 구두와 운동화를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선택하면 그만이다. 심지어는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해외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오른발과 왼발 양쪽이 똑같은 사람은 거의 없고, 발 모양도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사기 위해서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하는 만큼 편한 신발을 찾는 일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옷을 맞추듯 신발을 맞추기도 한다. 이른바 나만의 구두를 찾는 사람들이다.

대구 수제화거리가 형성된 데는 6·25라는 아픈 역사가 연관돼 있다.
대구 수제화거리가 형성된 데는 6·25라는 아픈 역사가 연관돼 있다.

그런데, 대구에 오랜 역사의 수제화 골목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대구 수제화 골목은 향촌문화관에서부터 경상감영공원까지의 300미터 정도 되는 골목이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군의 군화가 신사화로 재가공 되기 시작한 이후로 수제화 장인들이 대구로 몰려들며 형성됐다. 대구에 있는 미군부대에 가죽이 납품되고 중고 군화들이 시장으로 나오면서, 그 가죽들을 이용해 구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릴 때에는 이곳에 무려 200여 개의 수제화 점포가 있었다고 하는데, 기성품 구두의 대량 생산으로 매장의 수가 많이 줄어들어 지금은 60여 개의 점포만 운영되고 있다.

구두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숙련된 기술을 요한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데, 대략 105번의 공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장인이 직접 디자인을 하고, 종이에 본을 뜨고, 가죽을 재단하고, 잘린 조각들을 재봉틀로 연결하고, 구두 바닥을 만들어 붙이는 등의 복잡한 과정이 무려 105개나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을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고 장인의 손으로 일일이 한다. 이것이 대구 수제화 거리의 매장마다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장인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대구 수제화 골목을 걷는 동안 60여 개의 수제화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윈도우쇼핑을 해도 좋고, 큰 맘 먹고 나만의 구두를 하나 맞춰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 가지 더해 향촌동 수제화센터 방문을 추천한다. 향촌동 수제화센터에서는 우리나라 구두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수제화 골목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친지들 혹은 교회 식구들과 함께 가서 가죽공예 소품을 직접 제작하는 체험을 해도 재미있을 것이다.(향촌동 수제화센터는 월요일은 휴관이다. 그리고 기쁜 소식 하나, 관람료는 무료다.)

아, 그리고 중요한 팁 또 하나, 향촌동 수제화센터에 가면, 대구 골목 문화해설사로 섬기고 있는 홍수자 권사님(대구동신교회)을 만나보라. 필자가 대구골목 이야기를 연재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사부님과 같은 권사님이신데, 소녀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수제화 거리뿐만이 아니라, 대구 골목들의 이야기를 조목조목 들려주실 것이다. 권사님의 이야기에 푹 빠지다보면 이 골목에서 하루를 다 보내게 될지도 모르니, 그것은 좀 조심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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