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환철 사무총장(미래나눔재단)

윤환철 사무총장(미래나눔재단)
윤환철 사무총장(미래나눔재단)

인간이 만든 ‘금단의 장막’ 너머로, 강하게 무언가를 전해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 ‘복음’이나 ‘자유와 인권’과 같이 체제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대북전단을 보내는 탈북민들의 첫 마음은 과욕이긴 했어도 그런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본다.

2009년, 백령도에서 우연히 만난 박상학(자유북한운동연합) 씨는 자신이 만든 저렴한 낙하장치를 자랑하면서 군의 돈 낭비에 혀를 찼다. 그가 바람의 방향을 살펴 백령도까지, 누군가 기증했다는 가스탱크를 가득 실은 낡고 위험한 트럭을 몰고 온 것, 한 푼이라도 아껴서 더 많은 전단지를 보내려는 마음은 진심으로 보였다. 국가보안법이나 위험물 관리법과 같은 규율은 안중에 없었고, 국가나 체제를 뛰어넘는 인류의 대의를 전하는 데 불타고 있었다. 2011년에는 북측이 ‘조준격파’를 위협하자 바로 그 임진각에서 풍선을 띄우겠다고 할 때는 전투를 앞둔 군인과 다를 바 없었다. 기실 그가 2003년에 이 일을 시작한 동기가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대북 전단과 심리전을 중단한 데서 기인한다. 그 심리전을 자신이 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2014년에 국제적 인권상을 받는 등 이 분야의 상징적 존재가 되어갔다. ‘북한 인권’이라는 명분은 한국의 정부와 민간 뿐 아니라 미국 CIA가 관여된 ‘국립민주주의기금(NED)’의 자금까지 끌어들였다.

백령도에서부터 심각하다고 느낀 것은 그 전단들의 내용이었다. ‘세상의 기독교 국가들은 다 잘 살고, 이교도들은 다 못산다’, ‘국내외 위인은 다 기독교인’, ‘대한민국보다 잘 사는 나라가 몇 없다’ 식의 판단이 불가능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이 포함되었다. 우리 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가짜뉴스들을 망라하고, 자기들도 잘 모르는 북측 최고위층의 사생활을 지어냈다. 누가 북한으로 하여금 최고의 신경질을 내도록 했느냐는 그 저자들 간의 경쟁, 뭐든 후원자가 원하는 자극적 내용을 새겨넣는 구조가 점점 더 콘텐츠를 거칠게 했다. 카메라와 돈줄이 훨씬 더 절실했기에 더 이상 동남풍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모든 탈북민의 소원은 실향민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풍선은 북한 인권을 제고하지도, 고향 가는 길을 앞당기지도 못한다. 비닐에 정제된 복음을 새겼다 해도 심리전 수단으로 뿌려지니 신고대상일 뿐이다. 허위 사실을 지어내가며 갈등을 부추기고, 평화를 위하 노력을 폄하하며, 접경지대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태에서는 책임이나 대안을 고민해 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풍선은 탈북민들의 울분, 그 후원자들의 부채감, 명망가들의 명예욕을 허공에 올린다. 그들 각자는 풍선이 뭐 그리 과학적이어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적대적 분단, 복잡해진 동아시아의 이해관계 속에서 남북 관계의 부침을 두루 경험하고, 다음세대에 이 불행의 씨앗을 넘기지 않으려 고민하는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그들이 자기 논리와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사회가 탈북민 집단 전체에 대한 우호적 시선을 거두게 만드는 것이 최소한의 우려라면, 북으로 하여금 어렵게 열린 평화적 대화를 걷어찰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최악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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