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로 온전히 거룩함 이룬다

1.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해짐

효과적으로 부름을 받고 중생된 자들은 그들 안에 창조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지니고 실제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으로 그들 안에 거하는 그의 말씀과 영에 의해서 더욱 거룩해진다. 죄의 전체 몸의 지배가 파괴되고, 그 가운데 있는 수많은 정육이 점점 더 약화되고 극복되며, 그들은 모든 구원적 은혜 가운데 점점 더 살아나고 강해져서 참 거룩함의 실천에 이른다.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다.(13.1)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우리는 칭의(稱義)와 성화(聖化)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이를 이중적 은혜(gratia duplex, double grace)라고 부른다. 칭의는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며, 성화는 거룩하다 함을 얻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전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한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영화(榮化)는 성화의 완성을 의미하므로, 본문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는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바, ‘당하신 순종’(obedientia passiva, passive obedience)은 인류의 원죄(原罪)와 본죄(本罪, 自犯罪)로 인한 모든 형벌을 치르셨음을 의미하고, ‘행하신 순종’(obedientia activa, active obedience)은 율법에 순종하여 영생을 얻는 언약의 조건을 다 이루셨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당하신 순종은 ‘수벌’(受罰)이라고 칭하며, 행하신 순종은 ‘수법’(守法)이라고 칭한다.

그리스도의 당하신 순종과 행하신 순종의 의가 모두 대속의 값이자 공로로서 우리에게 전가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듭난 생명(生命)뿐만 아니라 생기(生氣)와 생활(生活)도 값없는 은혜로 부여받는다. 살아남도, 살아가는 힘을 얻음도, 살아가는 것도 모두 은혜이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말하듯이(3.11.23, 3.17.10), ‘오직 믿음으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도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sola fide non tantum nos, sed opera etiam nostra iustificari). 우리의 선행(善行)과 상급(賞給)조차도 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받아서 돌 같은 마음이 살 같은 마음으로,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게 된다(겔 11:19~20, 36:26~28).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부여된다(고전 1:30).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을 받게 되며(살후 2:13),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된다(요 17:17).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엡 5:26). 하나님의 자녀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된다(롬 6:18). 더 이상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지 아니라고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갈 3:10, 롬 6:14).

영생은 은사로서 부여되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의미하는바, 복된 생명과 복된 생활을 모두 아우른다(롬 6:23). 성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함으로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는 새 생명의 은혜를 누릴 뿐만 아니라 날마다 옛 사람에 속한 행실을 죽이고 새 사람에 속한 거룩한 삶을 사는 새 생활의 은혜도 누리게 된다(롬 6:5).

성화는 온전한 거룩함을 이루기 위하여 날마다 거룩해지는 것이다. 거룩함은 구별해서 드림을 뜻한다. 구별만 해서는 안 되고 구별해서 드려야 한다. 자기 자신을 영적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딤후 2:15, 롬 12:1). 자기 자신을 흠이 없고 순전하게 구별하여 믿음의 제물로서 전제와 같이 부어서 드려야 한다(빌 2:15, 17).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마주보는 영화에 이를 수 없다(히 12:14).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함을 명령하신다(레 20:7).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죄에 사로잡혀 있고 생각하고 도모하는 모든 것이 악하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것으로써 육신으로 타고난 것을 죽여야 하며(롬 8:13), 새 사람에 속한 것으로써 옛 사람에 속한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롬 6:6; 갈 5:24).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레 20:8)

2. 성화의 점진성과 계속성

이 성화는 전인(全人)을 통하여 모든 곳에서 일어나나 이 땅의 삶에 있어서는 불완전하다. 여전히 그 모든 부분에 부패의 어떤 잔재들이 거주한다. 그것들로부터 계속적이고 화해될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나서 육체는 영에 거스르고 영은 육체에 거슬러 정욕이 인다.”(13.2)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는 거룩함을 온전히 이룬다(고후 7:1). 그러나 이 땅에서는 아무도 완전함(perfectio, perfection)에 이를 수 없다. 거듭난 성도에게도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육체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는 여전한 곤고함이 있어,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영의 일과 육신의 일이 끊임없이 서로 다툰다(롬 7:22~25, 8:5, 갈 5:17).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났으니 성령으로 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갈 3:25),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 가운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육체로 마치는 자리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수시로 받는다(갈 3:2~3).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잡힌 자들이지만, 이미 다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다 이룬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러 달려가야 한다(빌 3:12).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생명의 성령의 법’을 즐거워하게 되었다(롬 8:1). 종의 멍에를 벗어난 우리가 쉼을 얻으려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리스도의 짐을 져야 한다(갈 5:1, 6:2, 마 11:29).

성도의 지상의 삶은 끝없는 경기이며 전쟁의 연속이다. 이 땅은 나그네의 처소로서 일터이자 경기장이며 전쟁터이다. 우리는 수고하는 농부처럼 애써 씨를 뿌리고 경작해야 하고, 하나님의 법에 따라 힘껏 달리는 경기자가 되어야 하며, 모집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기쁘시게 하는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한다(딤후 2:3~6). 무엇보다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야 한다(엡 3:16). 이는 오직 영광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고후 3:7). 우리가 영광의 주와 함께 거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됨은 오직 ‘주의 영’, ‘영광의 영’으로 말미암는다(고전 2:8; 고후 3:18, 벧전 4:14).

3.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로 은혜 안에서 자라감

남아있는 부패가 그 전쟁에서 한 동안 훨씬 더 우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거룩하게 하시는 영에 의해 공급되는 계속적인 힘으로 거듭난 부분이 승리한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면서 은혜 안에 자라간다.”(13.3)

우리는 ‘영광의 주’의 은혜로 끝내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고전 2:8, 약 2:1, 벧전 5:4). 그리스도가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신다(골 1:11). 그 힘으로 우리가 땅의 지체와 몸의 행실을 죽이게 된다(롬 8:13, 골 3:5).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세상도 십자가에 못 박는다(갈 5:24, 6:14).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세상을 이기게 된다(요일 5:14). 그 이김을 그리스도가 선물로 주신다(고전 15:57).

성도의 거듭남도 은혜요 자라감도 은혜다. 이는 언약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자라감은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의를 값없이 충만하게 누리는 것이다. 잘 누리는 것이 선행이며, 잘 누렸다고 상급을 주신다. 나무가 빛과 양분과 수분을 잘 누리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성도도 그러하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엡 4:15)

우리는 항상 복종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루심은 하나님의 행하심에 따른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행하신다. 우리는 흠 없고 순전해야 한다. 믿음의 제물과 섬김을 드려라.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전제로 부어 드려야 한다. 이는 생명의 말씀의 역사, 빛의 역사이다(빌 2:12~18).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다(엡 1:4). 그러므로 그 영원한 작정의 경륜을 좇아, 예배로, 말씀으로, 고백으로, 기도로, 헌신으로 자라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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