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성공적 신앙생활의 열쇠 ‘성령’으로 충만하길 기도합시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 19:6)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어떤 사람이 거리에서 호두과자를 사 먹었는데, 그 안에 호두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따졌더니, 호두과자 장수가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 있는 것 봤소!” 그래서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어도 붕어빵이라고 부르고, 국화빵 속에 국화가 없어도 국화빵이라고 부르고, 호두과자 속에 호두가 없어도 호두과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없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에게 아주 놀라운 질문을 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 이에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에베소 교인들이 “우리는 성령이 계심을 듣지[도] 못하였노라”(3절)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은 진정한 크리스천입니까?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성령은 누구인지, 성령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성령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으로 세 분, 삼위로 계시는데, 서로 차별이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제일 높고, 아들 예수님이 그 다음이고, 성령 하나님은 제일 밑의 열등한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함께 영원하시고, 함께 동등하시며, 동일한 본질을 갖고 계시지만, 각각 구별된 인격으로, 일체적 연합을 이루어 존재하시며 사역하십니다. 그래서 동등하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함께 일체를 이루어 사역을 하시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삼위일체가 되어 늘 함께 사역하시지만, 그 사역을 굳이 구분을 하자면 성부 하나님은 창조의 사역을 하셨고, 성자 예수님은 구속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성령은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합니다.

거듭나게 하는 중생의 사역은 성령의 결정적인 사역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습니까? 진정 거듭났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있고, 또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거듭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몇 가지 증거를 확인합니다.

①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죠. 갈라디아서 4장 6절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내 아버지로 믿어져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라면, 성령으로 거듭 태어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로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읽습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까? 그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나의 주되심을 믿습니까? 그런데 누가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주셨을까요? 내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선물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거듭나 예수님을 주로 믿게 된 줄 깨닫기 바랍니다.

③ 여러분은 주일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발걸음이 교회로 향하십니까? 그렇다면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주일이면 아버지의 집인 교회를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래서 나를 신앙인으로 낳은 어머니 같은 교회에 와야 마음이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로 오는 발걸음도 내가 온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내 발걸음을 인도해 주신 줄 깨닫기 바랍니다.

종종 저의 막내아들에게 묻습니다. “윤솔, 네가 내 아들이냐.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네가 태어날 때,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을 어떻게 아냐?” 아들은 제 말에 흔들리지 않고 “아빠, 당연히 제가 안 봤지만, 그래도 제가 아빠, 엄마 아들이잖아요”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을 의식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셨기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고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고, 또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가 예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합니까?

“예, 나는 성령을 확실히 받았습니다. 내가 성령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을 주로 믿고, 늘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말씀 듣고, 기도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시면 100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달라집니까? 절대로 달라지지 않습니까? 달라집니다. 그 증거가 저와 여러분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면 변화시킵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열매가 우리 인생 가운데 많이 열려 온전히 변화되기를 소원하면서 하나씩 헤아리며 암송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이런 놀라운 성령의 열매가 여러분의 인생에 알알이 맺히길 축원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몇 가지입니까? 9가지 열매입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성령의 열매는 9가지 열매인데, 9개의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단수입니다. 복수가 아닙니다. 하나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누구는 사랑의 열매만 맺고, 누구는 희락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나는 사랑의 열매는 있는데, 절제의 열매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오미자처럼 여러 맛을 가진 하나의 열매입니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이렇게 5가지의 맛이 나서 오미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9가지의 인격의 맛이 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맛, 희락의 맛, 화평의 맛,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맛이 성령의 사람의 인격 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감나무에는 감이 열리듯이, 예수 믿는 성령의 사람은 아름답고 조화로운 9가지의 인격적인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물질의 축복을 받고, 건강의 축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고, 방언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의 열매 맺어 예수님을 닮은 인격자가 되는 것임을 깨닫길 축원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랑도 사랑할 힘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도 용서할 능력이 없으면 용서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를 못합니다. 전도 하고 싶지만 전도할 힘이 있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비단 영적인 일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죄로 물든 세상을 살면서 정직하게 살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위로부터 오는 힘과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성령 충만하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습니다. 둘러싼 환경과 조건을 넘어서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기쁘게 감사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능력 있게 전도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생깁니다. 용서의 능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의 열쇠임을 깨닫고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사도 바울이 요한의 세례만 받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친히 안수 기도를 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두 손 들고 간절히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며 기도함으로, 코로나19의 두려움을 떨치고 늘 승리하는 성령 충만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