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자녀가 본 5·18 생생한 진실을 소환하다

<제니의 다락방> (제니퍼 헌틀리/하늘마을)

서양인 소녀의 눈에 비친 오월 광주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제니의 다락방>(하늘마을)은 아홉 살 제니의 시점에서 5·18을 이야기한다. 저자인 제니퍼 헌틀리는 아버지 찰스 베츠 헌틀리(한국명 허철선) 선교사의 자녀 4남매 중 막내로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나, 열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광주민주항쟁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눈앞에서 겪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동족을 학살하고, 방금 헌혈을 마치고 돌아가던 어린 여학생이 시신이 되어 다시 병원에 실려 오고, 아버지가 촬영한 사진들 속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숨진 사람들을 목격한 사건 등은 소녀의 뇌리에 두고두고 공포와 악몽으로 자리했다.

한편으로 정부와 언론이 침묵하고 거짓보도를 일삼는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진실을 추구한 부모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집 다락방에 숨어든 이들과 숨죽여 기도하며 함께 보낸 시간처럼 뿌듯한 추억들도 남아있다.

저자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들을 가지고 쓴 이 책은 마치 잔혹동화처럼 한국의 독자들에게 슬픔과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5·18에 대해 지금도 망언을 일삼고, 지역과 이념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이들은 부디 어린 서양인 소녀의 시선으로 그 시대와 현장을 다시 들여다 볼 일이다.

제니의 부친인 허철선 선교사는 미국남장로교선교사로 1969년부터 광주에서 사역하며 광주기독병원 원목과 호남신학대 교수로 봉직했다. 특히 5·18 당시에는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가옥을 피난처로 제공하는 한편, 부부가 각기 사진과 글로 광주의 실상을 대외에 알리며 훗날 진실규명에 결정적인 자료들을 구축하기도 했다.

광주 양림동에는 제니의 가족들이 살았던 가옥이 지금도 보존되어 기독교 대안학교와 문화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5·18 후 미국으로 귀국해 별세한 허철선 선교사의 유해는 30년만인 2018년 한국으로 돌아와 양림동산 외국인선교사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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