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율 목사의 사진묵상-성령의 열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의 추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진노’로 해석하여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중소기업과 소규모 자영업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혀 경영자나 종업원들의 생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전국 미래자립교회 목회자들과 해외 선교사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
그들의 안타까운 호소를 듣고 있자면 국가 보조금 정도로 도저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나마 조금은 위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속히 치료약이 개발되어 모두가 안심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들만큼은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바로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 즉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맑은 날 이른 아침에 풀잎이나 나뭇잎에 맺혀 있는 ‘이슬’을 호세아 선지자는 우상 숭배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침 안개 같고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호 13:3) 반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를 향해서는 이슬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선포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와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호 14:5)
팔레스타인 지역은 비가 드문 곳으로 건기에는 비를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광야에서 풀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슬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33편 1~3절에서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성전에 올라가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한밤중 아무도 볼 수 없이 내린 이슬처럼 성령의 은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린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지만 실제로 임한다.(요 3:8) 밤중에 풀잎에 내린 이슬은 온종일 작열하는 태양 볕에 시들어 지친 잎사귀에 생기를 공급하고, 사막에서도 나무가 자라며 꽃이 피게 만든다. 이처럼 새순을 솟아나게 하는 이슬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을 찾는 자의 메마르고 지친 영혼을 새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뜨거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밤중에 장막에 내리는 생명수와 같은 ‘이슬’ 때문이었다. 뜨거운 사막에 홀로 남은 듯 느낄 때,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는 것 같지만 영혼을 소생케 하는 ‘이슬’과 같은 성령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다. 그래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앞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한다.
“왕의 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왕의 은혜는 풀밭의 ‘이슬’ 같다”(잠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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