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순종의 종’ 하나님 자녀는 멍에 멜 때만 안식 얻는다

1. 자유의지: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할 의지

하나님이 사람의 의지에, 강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성의 어떤 절대적 필연성에 의해서 선 혹은 악에 이르도록 결정되지도 않는 본성적인 자유를 부여하셨다. 사람은 그가 무죄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선하고 기쁨이 되는 것을 원하고 행하는 자유와 권능을 지녔으나, 그 상태가 가변적이어서 그것들을 상실할 수도 있었다.” (9.1~2)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하나님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즉 시간과 공간, 해와 달과 별, 하늘과 땅과 바다, 하늘의 새와 땅의 짐승과 바다의 고기, 수목, 그리고 ‘섬기는 영’인 천사를(히 1:14) 지으신 후, 마지막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 1:27).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천지와 만물을 먼저 창조하셔서(창 2:1), 사람이 만물 가운데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며,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셨다(창 1:28). 지음을 받은 모든 것이 이러한 계획, 뜻, 경륜에 부합하였기 때문에, 그것들을 심히 보기 좋아하셨다(창 1:31).

하나님은 창조 후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 2:3). ‘복’은 ‘선한 가운데 누림’을 뜻한다. ‘거룩함’은 ‘구별해서 올려 드림’을 뜻한다. 하나님이 여섯째 날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신 것은(창 2:2),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사람과 안식함에 있음을 말해 준다. 안식일의 ‘복’과 ‘거룩함’은 사람에게만 고유하게, 본질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점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막 2:27).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창 1:26~27).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27). 사람이 영혼과 육체의 구조를 지닌 유일한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진리와 의와 거룩함을 부여하셨고(참조. 엡 4:24), 영혼이 지・정・의(知情意)의 기능을 하는 인격체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신 것은 사람에게서 마음과 뜻한 힘을 다한 인격적 순종을 받고자 하셨기 때문이다(신 6:5).

무엇보다 사람에게는 본성적으로 자유의지가 수여되었다. 그리하여 짐승과 같이 절대적 필연성에 얽매여 본능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善惡)과 정사(正邪)와 시비(是非)를 판단하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것을 선택하고, 추진하고,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자유의지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할 의지’라고 정의되는 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므로(삼상 16:7), 중심이 하나님께 합한 자의 의지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유의지 가운데서의 순종을 조건으로 해서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하셨다. 그 순종은 무슨 특별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의 자리에서 안식의 복을 누리고 그 누림을 지족하게 여기며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하여 사람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창 2:16~17).

2. 인류의 타락과 자유의지의 상실

사람은 자기의 타락으로 죄의 상태에 빠져서, 구원에 가닿을 있는 영적인 어떤 선을 지향하는 의지의 모든 재능을 전적으로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자연인으로서는 철저히 선을 혐오하고 죄 가운데 죽어 있을 뿐, 자기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그렇게 되도록 준비할 수 없게 되었다.”(9.3)

하나님은 오직 사람과만 언약을 맺으셨다. 오직 사람에게만 자유의지에 따른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을 주시고자 하셨다. 영생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낳으셨다고 하시고, 사람에게만 자기의 우편에 앉으라 하신다(히 1:5~6, 13). 이 점에 있어서, 사람은 천사보다 더 높고 귀하다.

어거스틴이 말한 바, 타락 전 인류는 ‘죄를 지을 수도 짓지 않을 수도 있는’(posse peccare sive non peccare, able to sin or not to sin)가변적인 상태에 있었다. 하나님은 그 상태에서의 자유의지에 따른 순종을 받기를 원하셨다. 이 상태는 인격체로서 지음을 받은 최초의 인류의 순전함(integritas, integrity)에 지극히 부합한다. 혹자는 자유의지가 없었으면 죄도 없지 않았겠느냐며 반론을 제기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인류 창조의 경륜 혹은 비밀을 도외시한 소이(所以)이다.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부여되지 않았다면, 언약체결도 없었을 것이며, 영생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요 7:17), 생명의 길과 복의 길을 선택하며(신 30:19), 마음을 정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며(계 22:17),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몸을 영적 예배로 드리기를 원하신다(롬 12:1). 그것이 인격적 순종이며, 그 인격적 순종이 하나님께 돌릴 찬송, 즉 찬양이다. 그리하여 시편은 마지막 절에서 호흡(생기)가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노래한다(시 150:6).

그러나 첫 언약의 머리인 아담은 언약의 조건인 순종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다. 그 불법이 죄였으며(요일 3:4), 그 죄로 인하여 사망과 오염이 들어왔다. 언약에 따른 죄의 전가로 인류가 예외 없이 모태에서부터 진노의 자녀로 형성되어 허물과 죄로 죽고(엡 2:1, 3), 전적 무능, 전적 부패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어거스틴이 말한 바, ‘죽지 않을 수 없는’(non posse non mori, not able not to die) 상태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non posse non peccare, not able not to sin)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할 의지’ 즉 ‘하나님께 중심이 합한 것을 뜻하고 행할 의지’인 자유의지를 상실하게 되었다.

타락한 인류는 외적으로 죄를 억제하는 일반은총을 누리는 정도의 자연인으로서의 의지는 가지고 있으나, ‘구원에 가닿을 수 있는 어떤 영적인 선을 지향하는 의지의 모든 재능은 전적으로 잃어버렸다.’ 모든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고(롬 8:7), 모두 치우쳐 무익하게 되어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며(롬 3:12), 세상 풍조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나 불순종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께는 불순종하며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는다(엡 2:2; 고전 2:14). 전부 못된 나무가 되어 나쁜 열매만 맺게 된 것이다(마 7:16~18). 죄와 불법과 함께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저주가 모든 사람에게 임한 것이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3. 자유의지의 회복: 인류 창조의 목적을 이루심

하나님은 죄인을 변화시켜 은혜의 상태로 옮겨놓으실 때 죄 아래서의 자연적 속박에서 그를 해방시키시고 오직 자기의 은혜로 그가 영적으로 선한 것을 자유롭게 원하고 달성할 수 있도록 하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남아있는 자기의 부패 때문에 선한 것을 원함이 완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로 악한 것을 원한다. 사람의 의지는 영광의 상태에서만 완전히 그리고 불변하게 오직 선에 자유롭다.”(9.4~5)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에, 중심이 합한 행위만 받으신다. 그러므로 인격적 순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중심이 거듭나야만 한다. 즉 자기 자신이 ‘새 것’이 되어야 한다(고후 5:17). ‘진노의 그릇’이 ‘긍휼의 그릇’으로 바뀌어야 한다(롬 9:22~23). 아버지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있어야 한다(딛 3:5).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아들이 부여하시는 생명의 진리로써 자유롭게 되고(요 8:32), 거룩하게 된다(요 17:17).

이렇듯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어거스틴이 말한 바, ‘죽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mori, not able to die)와 ‘죄를 지을 수 없는’(non posse peccare, not able to sin)상태에 있게 된다. 이 땅에서는 아직 죄를 지을 수 없다 함이 완전함을 뜻하지 않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함을 뜻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하나님의 자녀는 악에는 자유롭고 의에는 매이는, ‘순종의 종’이 된다(롬 6:16~20). 그리하여 즐거이 주님의 멍에를 멘다. 그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 그 멍에를 멜 때에만 안식이 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니라”(마 11:29). ‘하나님의 뜻에 대한 뜻을 다한 순종,’ 여기에 인류 창조의 목적이 있으며, 행함 가운데 복된 쉼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최고의 고상함(dignitas, dignity)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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