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의 골목길 역사산책] 국민건강보험 뿌리 논쟁
[최석호의 골목길 역사산책] 국민건강보험 뿌리 논쟁
최석호의 골목길 역사산책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 박용미 기자
  • 승인 2020.04.28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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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 의료보험 청십자의료보험 이동 사무실. 미국 의료보험 발상지인 텍사스주 달라스의 한 공원에 이동사무실을 설치하고 가입자를 모집하고 있다.(출처=달라스 모닝 뉴스)
미국 최초 의료보험 청십자의료보험 이동 사무실. 미국 의료보험 발상지인 텍사스주 달라스의 한 공원에 이동사무실을 설치하고 가입자를 모집하고 있다.(출처=달라스 모닝 뉴스)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가 코로나19 확산 방지 대책과 관련해서 한 발언을 놓고 때 아닌 국민건강보험 뿌리 논쟁이 벌어졌다.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혁신적인 의료보험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회안전망을 구축했기 때문에 코로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의료보험 역사는 1963년 11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날이다. 정부가 의료보험을 시행하지 않는 대신에 민간에서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장기려 박사는 미국 텍사스주 베일러대학교 저스틴 킴볼 부총장이 1929년 조직한 의료보험조합 ‘청십자단체의료보험’에 주목한다.

교사들이 건강 때문에 결근한 날짜로 의료수요를 계산하고 베일러병원 운영비로 비용을 산정했다. 킴볼 부총장은 청십자단체의료보험을 조직하고 보험료를 걷어서 질병기금을 조성한다. 지금은 미국 내 36개 건강보험회사에서 1억6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최대 민간보험 연합체로 성장했다.

장기려 박사는 미국문화원으로 달려가서 청십자단체의료보험에 대해서 연구한다. 부산대학교 의대 학장으로 재직하던 1956년에 만든 성경공부 동아리 ‘부산모임’ 회원들과 함께 의료보험제도와 조합의 취지 등에 대해 논의한다. 이어서 100여 개 교회에 취지문을 보낸다. 1968년 5월 31일 23개 부산지역 교회에서 가입한 723명 조합원과 함께 ‘청십자의료보험’을 시작한다.

박정희 정부는 북한보다 29년 늦은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먼저 직장의료보험을 실시한다. 청십자의료협동조합 조합원 중에서 일부 직장인이 직장의료보험으로 옮긴다. 이어서 1989년 7월 1일 노태우 정부는 지역의료보험을 실시한다. 1968년 장기려 박사가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운영한지 21년만이다. 청십자의료협동조합 조합원 23만4366명을 지역의료보험에 편입시키고 조합을 해산한다. 21년 동안 788만9000명이 치료를 받았다.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은 전 국민 건강보험의 밑거름이었다. 청십자의료협동조합에서는 수입에 맞춰서 지출을 결정하는 양입제출 원칙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함으로써 1979년 손익분기점에 도달했었다. 지역의료보험 수가를 책정할 때 청십자의료협동조합 방식을 참고한다. 또한 청십자의료협동조합 직원 63명 중 62명이 의료보험공단에 참여함으로써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의 운영 노하우를 고스란히 지역의료보험에 적용한다. 이리하여 불과 12년 만에 전국민의료보험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킨다. 서양에서는 100년 걸렸고 일본에서는 36년 걸렸다.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은 영리형 민간의료보험의 문제점과 이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중복 가입, 보험금 지급 제한, 보험자와 가입자 간 갈등, 사회계층 간 형평성 문제, 의료이용 증가와 공보험 재정 악화 우려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이 없었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안정적으로 정착한 대한민국 전국민건강보험은 없었다. 과거에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탓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그만큼 힘든 길을 걸어왔다. 그렇다고 장기려 박사나 한국교회에 공을 돌리자는 것도 아니다. 왼손조차도 모르게 할 따름이다. 그러나 오른손이 한 일을 특정 정치인이 했다고 그릇되게 치켜세운다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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