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근 목사(남부전원교회)

박춘근 목사(남부전원교회)
박춘근 목사(남부전원교회)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격리를 그리고 교회마다 공예배가 깨지는 초유의 상황을 맞고 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신학과 신앙적으로 검토할 새도 없이 영상예배라는 문화적 충격과 함께 몇 달 몇 주를 보내고 있다. 또한 메스컴을 통해서는 매일 시간마다 죽음을 숫자로 접하고 있는 엄중한 시기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현실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에 의해 흔들리는 세계,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를 보고 있다. 작은 미생물이 온 지구를 뒤집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나타나 자신의 법칙을 고집하고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미 안착된 규칙들을 다시 재배치하기도 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르게 그리고 새롭게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죽음의 공포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화성에 가서 살고, 복제인간을 만들고, 영원히 살 것이란 인간 지식의 덧없음과 그 한계를 보이고 다만 숨 하나, 먼지일 뿐임을 깨닫게 하고 있다. 깨닫게 하는 시간은 불과 몇 주일이면 충분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커다란 충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코로나19 사태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난하든 부하든, 그리고 생김과 피부색이 어떠하든,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음을 깨우쳐 주고 있다. 침묵 속에서 스스로 돌아보고 ‘약함’과 ‘연대성’의 가치에 대해 이해할 것을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들에 대해 귀중성을 알아가기 시작해야 했고,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중요성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일이 삶에서 더 이상 우선이 아니고, 여행도, 여가도 성공한 삶의 척도가 아님을 깨닫는 시간이다. 생명에 관해서도 병원이든 물건이든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들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이 때에 신자는 주의 재림과 주님 앞에 서야 하는 종말론적 시간을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세상에서 인간만이 미래를 예측한다. 자기 인생의 미래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도 내다보며 자기의 종말도 역사의 종말도 생각하고 염려하게 한다. 기독교인은 현재에만 집중해 현재만 사는 자들이 아니다. 종말을 알아 종말을 바라보며 현재를 사는 자들이다. 기독교인이 향할 곳을 미리 알아서 그 확신 가운데서 산다는 것이 아니다. 신자도 여전히 내일을 모르고 갈 바를 알지 못한다.(히 11:8) 다만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고 하신 그 분을 알기에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예일대 셀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책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은 사람을 물질로 보고, 죽음도 물질의 소멸로 보지만, 기독교인은 계시의 말씀을 통해 죽음은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시작하고 경영하신 일의 성취이며, 완성인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고난주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역사의 주인이시오, 시작과 마지막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골고다에서 수치와, 채찍의 고통과 모두에게 버려지는 철저한 단절의 고통을 겪으셨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사망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이제 우리는 부활절기를 코로나19 사태에서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온 성도와 전국교회는 살아계신 주님이 지금 현재 역사에서 섭리를 이루고 계심을 믿고, 코로나19 사태에서 세상과는 달리 거룩한 두려움에서 주시는 교훈을 배워할 때이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