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支離滅裂)이라는 말이 있다. ‘갈가리 흩어지고 찢겨져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뜻을 가진 이 고사성어는 주로 대결상황과 관련해 자주 쓰인다. 적의 대군 앞에서 일치단결해서 맞서도 아쉬울 판에, 스스로 자중지란을 일으켜 패배가 불을 보듯 뻔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을 ‘지리멸렬 한다’라고 표현한다.

요즘 교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바로 이 단어가 떠오른 건 무슨 까닭일까. 같은 진영을 이루고는 있는데, 저마다 전투를 벌이는 상대는 달라 보인다. 누구에게 물어도 동성애 혹은 신천지를 포함한 이단들이 싸움의 표적이라는 것에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만, 실제 싸움은 전혀 엉뚱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에 사회적 지탄이 집중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은 참인데, 방역을 위한 국민적 노력에 보란 듯이 역행하며 결과적으로 여론의 화살 방향을 정통교회 쪽으로 돌려놓는 움직임이 그 하나이다. 또 하나는 동성애 반대라는 노선을 확고히 지켜 서서 적잖은 몫을 감당해온 한국 최대 보수교단 총회와 그 산하 신학교를 무참히 폄훼하는, 도를 넘은 내부 공격행위이다.

이래가지고는 싸움이 될 턱이 없다.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고, 십자가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 아니던가. 이단과의 싸움도, 동성애와의 대결도 궁극적인 도달점은 여기에 두어야 한다. 이보다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대의는 없다.

세속적인 권력다툼에서 승리하는 것이 더 중대한 목표인 분들은 본인 소신을 솔직히 밝히고 공개적으로 정치를 하시라. 개인의 억울함을 푸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거든 사회법이든, 교회법이든 절차에 따라 호소를 하시라. 그것은 민주사회에서 시민이 누릴 당연한 권리이며, 이를 나무랄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일에 ‘교회’라는, ‘기독교’라는 가치를 함부로 동원하지 마시라. 거기서 얻는 이익이 한국교회의 영적 대오를 깨도 될 만큼 대단한 명분일 수는 없다.

전열을 가다듬는 데 집중하자. 그 밖의 가치들과는 잠시 거리를 두자. 다시 복음이다. 오직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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