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선한 하나님의 섭리는 원인과 과정, 결과에 모두 미친다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1. 친히 감찰하시고 뜻하시며 행하심

만물의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가장 지혜롭고 가장 거룩한 섭리로 자신의 무오한 예지와 자기 뜻의 자유롭고 불변하는 계획에 따라 자기의 지혜, 권능, , 선함, 자비의 영광을 찬미하게끔 가장 큰 것으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 행위, 일을 보존하시고, 지도하시며, 경영하시며, 통치하신다.”(5.1)

섭리(攝理, providentia, providence)는 문자적으로 미리(pro) 봄(videntia)을 뜻한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한다(대하 16:9). 선인이든 악인이든 누구나 그 눈을 벗어날 수 없다(잠 15:3). 하나님은 자기 뜻의 결정대로 계획하신다(엡 1:11). 그의 계획은 영원하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른다(시 33:11). 하나님은 뜻하시면 행하시고, 그 행하신 바가 모두 선하므로 하나님의 섭리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모두 미친다. 칼빈이 말하듯이, 하나님의 섭리는 그의 눈에 못지않게 그의 두 손에도 속한다(기독교 강요, 1.16.4).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이 그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히 1:2~3).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시 147:15). 자기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그 사이의 만물 가운데서 행하신 하나님은(시 135:6),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운행하시고, 즉 지도하시며 경영하시고,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확실한 명령이 없으면 비 한 방울도 떨어질 수 없다(레 26:19; 사 28:2; 학 2:17).

하나님의 섭리는 동전 하나에 두 마리를 살 수 있는 미물인 참새 한 마리와 우리의 머리털 하나에도 미친다(마 10:29~31). 하나님은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풀도 입히신다(마 6:26~30).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고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시 147:8~9), 우박을 내려 추위에 떨게 하시기도 하나 그것을 녹여 곡식을 자라게 하는 물이 되게도 하신다(시 147:17~18). 무엇보다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은 그들과 멀리 계시지 않고 그들 속에 살며 기동하시니,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고 경계를 정하셔서 그들이 땅에서 살게 하신다(행 17:25~28). 사람의 걸음 하나도 여호와로 말미암는다(잠 20:24).

2. 통상(通常) 섭리와 비상(非常) 섭리

1원인이신 하나님은, 비록 모든 것이 그 자신의 예지와 작정과 관련해서는 불변하고 무오하게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섭리로 제2원인들의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나 자유롭게 혹은 우유적(偶有的)으로 일어나게 관리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통상섭리에서 방편들을 사용하시나 그것들 없이, 그것들 너머로, 그것들에 반해서 자기의 기뻐하심에 따라 자유롭게 실행하신다.”(5.2-3)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정하신다. 그 예지(豫知)와 작정에 따라 모든 것이 불변하고 무오하게 일어난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은 보이지 않으나 현존하며 살아있다.

하나님이 그 손을 펴서 베푸시면 만물이 좋은 것으로 즐거워하나, 그 손을 거두시면 모두 죽어 먼지로 돌아간다. 하나님은 그 손으로 만물에 호흡을 주시고, 태를 열어 인생을 존재하게 하시며, 그 인생을 식물로 먹이신다(시 104:27~31; 127:3; 136:25). 그 손으로 해를 붙들어 낮의 빛으로, 달과 별을 붙들어 밤의 빛으로 삼으신다(렘 31:35).

하나님의 섭리는 자연의 통상적인 운행이나 인생의 일상사(日常事)를 넘어서 우리가 그 뜻을 다 알 수 없는 특별한 기적이나 비상사(非常事)에도 미친다. 하나님의 의는 계시된 것과 감춰진 것이 있으니, 우리는 계시된 것만 알 뿐, 감춰진 것은 단지 인정하고 찬미할 뿐이다. 요셉이 겪은 형들의 질투와 보디발의 아내의 정욕이 야곱의 가문을 살리고 끝내 언약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다. 악이 선으로 바뀌었다(창 50:19~20). 주님은 법 없는 사람들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하나님의 큰 일이 대적의 손을 통하여 성취된 것이다. 어둠이 도구가 되어 빛의 역사(役事)가 이루어진 것이다(행 2:11, 2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보기에 조리에 맞지 않게 여겨지는 경우라도 결코 헛되이 그 입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사 55:11). 하나님은 사라의 태를 닫으셨다가 다시 여심으로 후손의 번성에 대한 언약을 친히 이루셨다. 그리하여 자기의 신실하심을 보이심과 동시에 만국의 영광을 받고자 하셨다(창 12:2; 롬 4:19~21). 하나님은 다니엘과 세 친구를 사자의 입과 불에 던지시기도 하셨고 그 사망의 입에서 살려내시기도 하셨다. 그리하여 자기의 백성을 높이심과 동시에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기 원하셨다(단 3:19~30; 6:1~27). 하만이 자기가 세운 높은 나무에 자기가 달리게 된 것도 동일한 섭리였다. 하나님은 이 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영광을 받고자 하셨다(에 7:1~10).

여호와는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고, 스올에 내리기도 그곳에서 올리기도 하신다(삼상 2:6).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으시며 무슨 계획이든지 다 이루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치를 알 수 없으니 오히려 그것을 가리지 말고 그저 잠잠해야 한다(욥 42:2~3). 모든 것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선하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딤전 4:4~5). 섭리의 비밀을 다 알 수 없으니,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고 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단 3:18).

3. 죄에 대한 섭리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능, 불가해한 지혜, 무한한 선함은 심지어 최초의 타락과 천사들과 사람들의 다른 모든 죄에도 미칠 만큼 그의 섭리에 현시되는 바, 그것을 단순한 허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경륜 가운데 거룩하게 의도된 자신의 목적들을 위하여 그 죄들에 대한 가장 지혜롭고 가장 능한 제한과 그 외에 정돈과 통치를 결합시키셨다. 그러나 그 사악함은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오직 피조물로부터 나온다. 그는 가장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죄의 조성자나 인가자이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실 수도 없다.”(5.4)

하나님의 섭리는 인류의 죄에도 미친다. 사람은 순전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자기의 자유의지로 타락하였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죄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하였다(롬 5:12).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이 비참한 상태에 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함이다(롬 11:32).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한 섭리는 많은 경우 보이는 사람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다. 죄인들도 그 손으로 사용된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 원수였으나 그들이 합세하여 예수를 죽이게 하셨다(행 4:27~28). 패역한 앗수르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는 진노의 막대기와 분노의 몽둥이로 사용하셨다(사 10:5).

이렇듯 하나님은 죄인들을 섭리의 도구로 이용하시지만, 그렇다고 죄를 인정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죄를 짓도록 시험하시지도 않는다(약 1:13). 죄는 정직하게 지음을 받은 사람이 자기 꾀와 욕심에 빠져 저지르는 것이다(전 7:29; 약 1:14).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요일 2:16).

원죄와 후속하는 모든 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죄를 사함 받기만 하면 영생이 선물로 주어진다(롬 6:23). 하나님은 아무 작정 없이 죄를 허용하지는 않으신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작정이 죄를 조성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죄에 대한 섭리는 죄를 이기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지만,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롬 6:15).

4. 자기 백성을 높이시려고 낮추심

가장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때로는 자기 자녀들을 여러 모양의 유혹들과 그들 자신의 마음의 부패에 얼마동안 맡겨두심으로 이전에 저지른 죄들로 그들을 징계하시거나 그들에게서 그들 자신의 마음의 부패와 간계의 은밀한 힘이 드러나게 하셔서 그들을 겸손하게 하시고, 그들을 경성시켜 그들이 더욱 긴밀하고 항속적으로 그 자신에게서 부여되는 구호에 의존하도록 하시며, 더욱 주의를 기울여 모든 미래의 죄의 기회에 맞서고 다양한 다른 공정하고 거룩한 목적들을 추구하도록 하신다.”(5.5)

하나님이 우리를 약함 가운데 두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머물게 하려 하심이다(고후 12:7~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시려고 40년 동안 광야의 길에 세우시고(신 8:2), 히스기야의 교만을 꺾으시려고 그를 병들게 하셨다(대하 32:24~26). 하나님의 백성에게 환난이 주어지는 것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하시려는 것이다(시 77:1~12).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은 회개와 더불어 세 번의 고백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되었다(막 14:66~72; 요 21:15~17). 주님은 이 일을 미리 알고 계셨다(마 26:34). 하나님이 그 백성을 누르시는 은밀한 힘(vis occulta)에는 그들을 소생시키고 형통케 하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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