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봄날의 청라언덕은 정말로 예쁘다. 푸른 담쟁이라는 뜻을 가진 ‘청라’라는 이름은 봄날과 잘 어울린다. 1910년 즈음부터, 이 언덕에 살았던 대구지역 초기 선교사들이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청라언덕 아래 ‘은혜의 정원’이라 이름 붙인 선교사 묘역 중 마포화열 선교사의 묘비 모습.
청라언덕 아래 ‘은혜의 정원’이라 이름 붙인 선교사 묘역 중 마포화열 선교사의 묘비 모습.

청라언덕에 오르면 봄이 보인다. 봄철의 청라언덕은 노란 민들레가 돋아나고, 다홍색 명자나무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분홍색 벚꽃과 자색의 목련꽃이 향기를 피우며 사람들을 반겨주는 곳이다. 봄바람마저 불어오면, 말 그대로 ‘봄의 교향악’을 즐길 수 있는 동산이 된다.

청라언덕은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그 유명한 ‘동무생각’이라는 가곡이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장소였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박태준 선생이 사모했던 백합화, 그가 흠모했던 신명학교 여학생처럼 자신의 첫 사랑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청라언덕에 오르면 선교사들의 삶이 보인다. 청라언덕에는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블레어 주택, 챔니스 주택, 스윗즈 주택 등 3채의 주택이 있다. 1910년경에 지어진 이들 건물은 대구선교 초창기 선교사들의 실제 생활상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처럼, 선교사들도 복음을 위해 대구로 찾아왔다. 그리고 낯설고 불편한 이 땅에서 집을 짓고 살았다. 미국식으로 지은 이 집들 앞에 서면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품은 채, 조선 땅을 헌신적으로 섬긴 선교사들의 심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청라언덕에 오르면 선교사들의 죽음이 보인다. 언덕 아래쪽 ‘그레이스 가든(은혜의 정원)’에는 14기의 선교사들 무덤이 있다. 이 묘역에는 큰 비석과 작은 비석이 섞여 있는데, 큰 비석은 선교사들의 무덤이고 작은 비석은 선교사들의 어린 자녀가 묻힌 무덤이다. 대구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스 선교사의 아내 넬리 딕 아담스가 이곳에 잠들어있으며, 태어난 지 불과 열흘 만에 숨을 거둔 로저 얼 윈 선교사의 딸 헬렌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선교사들은 땅 끝인 대구까지 와서 섬기다, 이 땅에서 자신들이 낳은 아기들을 이 땅에 묻었다. 그럼에도 조선 땅을 끝까지 사랑으로 섬겼고, 결국 자신들도 은혜의 정원에 잠들었다. 은혜의 정원은 죽음이 있어야 부활도 있음을 보여준다.

청라언덕에서 꽃과 삶을 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청라언덕에서 영원히 사는 죽음을 보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랑하는 하나님과 한국인들에게 봉사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라는 묘비명의 주인공은 마포삼열(Samuel Moffet) 선교사의 아들인 마포화열(Howard Moffet)이다. 묘비 뒤로는 대구선교의 첫 열매 대구제일교회가 보인다. 복음의 열매는 십자가 다음에 피어나는 부활임이 틀림없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