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우리 교단은 오로지 칼빈주의 보수신학과 개혁신학 하나만을 위하여 분열의 아픔을 겪어왔다. 그렇다면 허허벌판에서 오늘의 총신을 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선진들이 땀과 눈물이 흘렸겠는가. 그래서 과거에 교단의 선진들은 총신을 생명처럼 여겼다. 그리고 총신의 신학자들을 섬기고 지켜 주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우리의 총신은 정치의 장이 되기 시작했고 교권 세력화의 각축장이 되었다.

한 사람의 지나친 욕망은 또 다른 패착을 불러왔다. 독 안에 든 쥐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 하마터면 독이 깨질 뻔한 실수를 범할 뻔 한 것이다. 마침내 총신에 관선이사를 불러왔고 교수들의 징계문제도 자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관선이사들의 결정에 따라야 할 상황에 처하고 있지 않는가. 좀 극단적 표현일지 모르지만 이는 동로마제국에서 화상반대파가 오스만 튀르크와 손을 잡고 화상숭배파를 몰아낸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교수들이 개혁주의 신학보다는 복음주의 신학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을 견고하게 하면서 복음주의적 신학의 요소도 가질 수 있다. 선교와 사역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인간의 전략과 책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신학의 근본은 개혁신학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총신이 개혁신학을 지키는 산실이 되고 못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교단의 지도자들이 총신을 정치의 장으로 삼지 말고 신학을 지도하는 장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교단은 총신의 운영과 재정적 후원을 절대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총신은 반드시 총회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 한마디로 교단과 총신은 정치적 관계가 아니라 유기적 관계가 되어 우리의 개혁신학을 지켜가야 한다.

여기에 대한 좋은 사례가 있다. 미국의 CRC 교단은 교단신학교인 칼빈신학교의 운영을 절대적으로 책임을 진다. 교단은 산하 교회들에게 신학교 운영을 위해서 의무헌금을 하도록 법으로 제정해 놓았다. 교단 산하의 교회들은 신학교 운영을 위해서 의무헌금을 한다. 교단은 재정적 지원 뿐만 아니라 항상 신학적인 지도를 한다. 그러면 신학교는 교단의 신학적 지도와 감독을 받게 되어 아름다운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총신은 학생 수급난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보다 재정난에 더 봉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어떻게 총신에 재정적 지원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교단은 사학법에 따라 총신의 교육 자율성을 존중하되, 신학에 관한 한 지도를 하고 관여하며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결코 총신을 내 정치적, 교권을 이루기 위한 야망의 터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어쨌든 교단은 총신을 향한 영적, 신앙적, 신학적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총신은 교단의 신학적 감독을 받아야 하고 개혁신학을 지키는 산실로 존재해야 한다. 그럴 때 다시 우리 교단은 굳건한 개혁신학 위에서 새로운 100년 대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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