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창조주 하나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복되게 하신다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1.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경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권능, 지혜, 선함의 영광을 현시하시기 위하여 태초에 무로부터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실로 그 심히 선한 모든 것을, 엿새 동안 창조하거나 만들기를 기뻐하셨다.”(4.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의 창조는 역사적(歷史的) 사건이며 역사가 시작된 사건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엿새 동안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창 2:1~2).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었다(골 1:16).

창조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세계에 있는 것이 모두 성부 하나님에게서 났다(고전 8:6). 그가 명령하시므로 하늘의 하늘도 존재하게 되었다(시 148:5). 성부의 창조는 성자이신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아들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골 1:15; 요 1:3; 히 1:2; 11:3). 이러한 성부와 성자의 창조에 있어서 그 역사(役事) 혹은 작용(作用)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출래하시는 성령께 돌려진다. 하나님이 자기의 영을 보내셔서 만물을 창조하셨다(시 104:30; 창 1:2; 욥 33:4).

‘태초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요 1:1)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태초’는 시간의 시작을 뜻한다. 그 ‘태초’ 자체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

하나님은 자존하시며 시작이 없으시나, 시간과 공간은 시작이 있는 엄연한 피조물이다. 만물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가운데서’(in)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과 ‘더불어’(with) 지음을 받은 것이다.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기껏해야 시공(時空)의 존재를 전제하고 그 가운데 놓인 세상의 구조, 물질의 구성, 사물의 질서와 법칙 등에 대해서 추론할 뿐이다. 이는 그들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는(엡 4:6)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엇이 있는 데서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그것은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n out of nothing, creatio ex nihilo)이다. 창조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그 무슨 인과관계나 논법으로도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항변할 수 없다. 우리 생각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그저 무지하며 창조의 이치를 가릴 뿐이다(욥 42:3). 왜냐하면 하나님은 있는 것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고 없는 것들로 있는 것들을 폐하시기 때문이다(고전 1:28)

만물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지음을 받았다(계 4:11).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으며(창 1:31),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다(잠 16:4). 만물의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었다. 모든 것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창조되고 보존되므로 그를 경배하고 그 이름을 찬양한다(시 148:5; 느 9: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롬 11:36).

만물의 절대적인 시작이 하나님의 창조에 있다. 하나님이 ‘권능’과 ‘지혜’와 ‘명철’로 모든 것을 지으셨다(렘 10:12; 시 104:24).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지혜이며(요 1:2; 잠 8:22~23), 그 말씀에 생명이 있다(요 1:4).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드러낸다(롬 1:20). 하나님은 자기의 피조물을 통하여 영광 받기를 원하셨는데, 사람이 패역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허망한 생각과 어두운 마음에 썩어질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었다(롬 1:21~24). 그 결과 피조물도 허무한 데 굴복하고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썩어짐의 종노릇하게 되었다(롬 8:20~22).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참 거룩함이 부여되었으며 그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과 그것을 성취할 힘을 소유한 이성적이고 불멸적인 영혼을 지닌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화에 복속하는 그들 자신의 뜻의 자유에 맡겨져 위반의 가능성 아래에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기록된 이 법 외에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계명을 받았다. 그들이 이를 지켰을 동안에는 하나님과 그들의 교제는 복되었으며 그들은 피조물에 대하여 지배권을 지녔다.”(4.2)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신 후에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1:26~27). 먼저 흙으로 사람의 형체를 빚으시고 그곳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 ‘생기’가 그 흙에 부여되어 영혼이 되었고, 그 순간 그 흙이 육체가 되었다. 그리하여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사람이 만들어졌다. ‘생기’는 사람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 생명이 영혼에 있다. 육체는 영혼과 분리되는 순간 죽게 된다. 이를 육체적 죽음이라고 일컫는다.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만 ‘살아 있는 영’인 ‘생령’이 된다.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거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영혼은 그 떠남과 불경과 거역 자체로 이미 죽은 것이다. 이를 영적 죽음이라고 일컫는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존재하기 시작하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죽음의 때에는 영혼으로만 존재하며(눅 23:43), 이후 부활의 때에 다시 영혼과 육체로 존재하게 된다(고전 15:42~44). 영혼이 없는 육체는 육체가 아니라 물체에 불과하므로 사람의 일부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영혼은 육체가 분리된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칼빈이 말하듯이,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과 육체 모두에 미치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의 주요한 좌소(座所, 자리, a primary seat of the image of God, sedes primaria imaginis Dei)가 된다.

사람은 지식(知)과 감정(情)과 의지(意)를 지닌 인격체로 지음을 받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알고 느끼고 뜻하는, 인격적인 순종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순전(純全)하게 창조하셨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엡 4:24)과 ‘지식’(골 3:10)이 사람에게 부여되었다. 사람의 영혼에는 이성과 의지가 있어서, 이성으로서 선악(善惡)과 정사(正邪)와 시비(是非)를 분별하게 되고, 의지로써 뜻을 세워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이성과 의지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양심이다. 양심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 두신 내적인 심판관이며 법이다(롬 1:25).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복되게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었다. 그 터로 에덴동산이 창설되었다(창 2:8). 하나님이 그 동산을 사람과 함께 거니셨다(창 3:8). 사람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지키는 권세가 부여되었다(창 1:28; 2:15). 그리고 각 생물의 이름을 지어 부를 정도로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이 넘쳤다(창 2:20). 이 모든 것보다 더한 복은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시 8:4; 144:3; 히 2:6),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 지음을 받은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하여 사람의 자유의지에 따른 인격적 순종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심과 동시에 사람을 자기 자녀로 삼고자 하셨다(창 2:16~17).

그러나 사람은 그 자유의지를 그릇되게 사용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다. 정직하게 지음을 받은 사람이 자기의 처소를 떠난 악한 영의 유혹을 받아(유 1:6)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창 3:5) 자의로 악한 꾀를 낸 것이다(전 7:29). 그 타락으로 인하여, 만물을 다스리고 자기의 발 아래 두어야 할 사람이(시 8:6) 오히려 만물 아래 종속되어 신음하게 되었다. 흙으로 빚어졌으나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져 생령이 된 고귀한 인류가 흙을 가느라 수고하고 흙에서 나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고생하며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비참함에 놓이게 되었다(창 3:17~19).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도 죽이고 살리시는 하나님을(마 10:28) 떠나게 되니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누리게 되는 지고한 복을 상실하고 육체와 함께 영혼도 죽고 말았다. 만물의 으뜸인 사람에게는 비할 수 없는 고상함(dignitas)이 부여되었으나, 피조물로서의 의존성(dependentia)을 전제하는 가운데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2)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 5:11)

내용을 입력하세요.

 

(주)각 단락 서두에 볼드체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본문은 라틴어 본에 비춘 필자의 번역이므로 그 이하의 내용과 다름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