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지금 대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큰 싸움을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곳이 바로 대구다. 대구에서만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들의 숫자가 6000명을 넘어섰다. 병상도, 마스크도, 의료진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대구는 여전히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선전(善戰)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동산병원의 헌신이다. 민간병원인 동산병원이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나섬으로, 병원 전체 병상 1000여 개를 코로나 환자들을 위해서 내어놓을 수 있었다. 덕분에 대구 전체의 코로나 환자 진료뿐만 아니라 일반 환자들의 진료에도 숨통이 틔었다고 할 수 있다.

대구 동산병원의 전신인 제중원 시절 존슨 선교사(왼쪽 첫번째)와 의료진들이 환자를 수술하는 모습.
대구 동산병원의 전신인 제중원 시절 존슨 선교사(왼쪽 첫번째)와 의료진들이 환자를 수술하는 모습.

그러면 동산병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동산병원의 태동은 1897년 12월 25일에 미국북장로교 소속 우드브리지 존슨(한국명 장인차) 선교사 가족이 대구에 도착하면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사였던 존슨 선교사는 앞서 사흘 전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대구로 달려와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존슨 선교사는 대구 의료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변변한 의료기술이 없던 조선 땅, 그것도 성탄절에 서양의학을 전공한 선교사가 대구를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과도 같았다. 존슨 선교사는 대구에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세웠다. <동산선교이야기>(박창식 목사 저)에 따르면 제중원은 1899년 12월부터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이듬해 1900년 여름까지 6개월 동안에 무려 170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고 한다. 오늘날 동산병원의 모체가 된 것이 바로 이 제중원이다.

대구의 모(母)교회와도 같은 대구제일교회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약령시가 나오고, 서쪽으로 내려가면 동산병원이 나온다. 처음에 대구제일교회도 약령시 안에서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약령시에 한약을 지으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육체적 연약함을 지니고 있었고, 그 연약함은 복음 앞에 쉽게 마음 문을 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제중원에서도 병을 치료받고 예수 믿은 사람들이 많았다. 백내장에 걸려서 앞을 보지 못했던 64세의 여인이 존슨 선교사에게서 수술을 받고 앞을 보게 됐다. 이후 그 가족이 다 예수를 믿은 것은 물론이고, 제중원에 가면 소경도 눈을 뜨게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덕에 복음도 함께 대구 땅에 널리 퍼졌다.

1912년 11월 15일, 건강상의 이유로 떠나기까지 존슨 선교사는 15년 동안 대구에서 육적 치료와 영적 구원에 힘썼다. 그 정신을 계승한 동산병원이 오늘날 대구 땅에 불어 닥친 고난과 열심히 싸우고 있다. 여전히 동산병원에는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일과 더불어 대구 땅의 복음화를 소망하며 섬기는 사역에 헌신한 일꾼들이 차고 넘친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도 동산병원을 향해 간절한 기도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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