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필자는 처음에는 합동 측과 개혁 측의 합동을 반대했다. 합동 측과 개혁 측이 하나 되면 총신을 제대로 다녀야 되고 심지어는 당회장권까지 빼앗기고 임시목사로 다녀야 한다는 괴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런 가짜뉴스와 헛소문에 놀아났던 것이다. 게다가 합동 측의 큰 어른이시자 초교파 활동도 많이 하신 두 어른을 찾아뵈었더니 그 분들께서도 합동과 개혁은 절대로 하나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합동을 반대했다.

오히려 광신대에 내려가서 광신대 총장을 설득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합동을 놓고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감동이 왔다. 그것은 내가 앞장서서 합동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일을 놓고 하지도 못하는 금식을 며칠이나 하면서 강단에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하나님께서 합동의 기치를 들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래서 합동의 기치를 든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관망했던 중부권의 많은 교회들이 다 합동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마침내 합동이 이뤄졌다. 제90회 총회가 열린 대전중앙교회에 들어갈 때 합동을 반대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 감사하기도 해서 울면서 들어갔다. 눈물이 하도 나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훌쩍훌쩍 울었다. 문득 정규오 목사가 생각이 났다. 정규오 목사가 1979년도에 분열의 오점을 남겼다 하더라도 그 날의 합동을 통하여 모든 실수를 다 덮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서기행 총회장께 감사하였다. 정치야말로 살리는 정치, 하나 되게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총회는 하나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비주류라는 딱지를 달고 다녀야 했다. 사람 모이는 곳에 어찌 그런 일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비주류라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필자는 교권의 양지 쪽으로 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자리가 오더라도 양보하고 또 양보했다. 그리고 오로지 낮은 자리에서 섬겼다.

총회 임원회를 비롯하여 어떤 상비부든, 또는 어느 지역협의회의 요청을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지원했다. 합동 교단 그 자체가 너무 좋아서 그저 기쁜 마음으로 섬겼다. 주보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라는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렇게 기쁠 수 없었고, 교회 역시 새 예배당 신축과 더불어서 든든한 교단을 배경으로 하여 더 크게 부흥하였다. 그리고 우리 교단 배경을 가지고 여러 가지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할 수 있었다.

이슬람 스쿠크를 막고, 반동성애 운동과 차별금지법, 종교인과세대처와 NAP, 각 인권조례를 막는 데 동역자들과 힘을 합하여 전면에서 대응하였다. 그 대신 욕도 많이 먹고 일을 하기 위해 재정도 많이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합동과 개혁이 하나 되었기 때문이고, 합동이라는 거대 장자교단의 배경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다.

90회 총회에서 합동이 된 것은 정말 한국교회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자, 우리 교단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합동과 개혁의 하나됨은 우리 교단에 부력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우리 교단은 개혁과 합동이라는 두 날개를 달고 다시 한 번 이륙해야 할 때다. 이제 우리 교단은 어떻게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고 이륙해야 할까. 교권다툼을 종식하고 새로운 총회 100년을 설계하며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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