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을 걷는 것처럼 인생에는 깊은 절망이 찾아올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이 목자이신 주님과 그 분이 들려주시는 생명수 같은 말씀을 만날 기회이다.

누가복음 24장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소개한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무 말 없이 길을 가고 있었다. 자칫하면 예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며칠 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만해도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면서, 그들은 아마 영화로운 자리에 앉을 날이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예루살렘에서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도리어 생명의 위험을 느끼자 참담한 심정으로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부활하신 예수께서 길을 가던 이 두 제자를 찾아오신 것이다. 그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엠마오로 가던 인생의 방향을 예루살렘으로 바꿨다. 그것만 아니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안내자의 경고를 무시한 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서 사막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고 다닌 적이 있다. 체감온도가 50도가 넘는 사막에서 물은 떨어지고, 신발 안으로는 모래가 들어와 걷기조차 힘들었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따가운 뙤약볕에 그럴 수조차 없었다.
나는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는 고백을 수도 없이 반복하였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죽음의 계곡과 같은 세상에서 영혼의 가이드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과 영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생명수와 같은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웠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나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 주님의 인도하심은 보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알지 못하는 마치 두 제자와 같은 모습은 아닌지 점검한다. 나와 세상 끝날까지 동행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인생의 행진을 계속할 것을 다짐한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으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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