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1979년 합동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어진 이후로 분열은 계속되었다. 합동 주류도 합신으로 나뉘고, 비주류는 더 많은 분열을 거듭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분열이 장로교 안에 수많은 군소교단을 양산해 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안 교단의 지도자들, 한병기 노진현 정규오 목사는 합신과 합쳐 보려고 했다. 그러나 교단 헌법 수용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 무산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정규오 목사가 합신은 제외하더라도 합동과 개혁측이라도 하나가 되자고 제안을 했다. 정규오 목사가 지난날 분열의 과오를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껴 다시 하나 되려고 한 결심은 위대한 것이다. 그래서 정규오 목사가 당시 합동측의 부총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를 무등산 헐몬수양관으로 초청한 것이다.

그때 정규오 목사를 찾아온 서기행 목사 역시 정규오 목사의 합동정신에 동의를 하였다. “목사님의 제안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신조와 대소요리문답, 예배 모범을 같이 사용하고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이어가는 진정한 보수교단끼리 어찌 합동을 못할 바가 있겠습니까?”

이때 정규오 목사는 개혁측의 합동 실무자로 김정중 목사를 세웠다. 김정중 목사 역시 “1979년 분립된 아픈 상처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송하였는데 마음을 비우고 원만하게 합의를 이끌면 합동은 잘 추진 될 것”이라며 온 몸을 던져 노력하였다. 그래서 2004년 6월 11일 합동을 위한 소위원회가 소집되었다. 합동측에서는 서기행 최성구 목사, 권영식 장로 개혁측에서는 김정중 변남주 목사, 김상술 장로로 위원을 구성하여 출범한 것이다. 이때 정규오 목사 역시 91세의 노구로 참석을 했다.

마침내 2004년 9월 21일 개회된 89회 총회에서 양교단이 합동한다는 안건이 상정되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게 예장개혁이 합동총회의 헌법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노회 구성문제나 신학교 운영문제, 광신대학교 출신 교육문제 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합동총회에서는 개혁교단영입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개혁측에서는 합동추진위원을 구성하였다.

2004년 11월 23일 합동총회의 개혁교단영입위원회와 개혁총회의 합동추진위원회의 상견례가 시작되었다. 양 교단은 예장합동의 헌법을 수용하기로 재확인했다. 양쪽에 7인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는데 개혁측에서는 총회장으로서 홍정이 목사가 김정중 목사의 바통을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개혁총회의 전권을 부여받아 서기행 목사와 합동을 추진하였다. 이때 신학과 헌법, 그리고 정치균형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당시 합동측 헌법 정치 4장 2조에 의하면 합동과 개혁이 하나 될 수가 없다. 그런데 90회 총회에서 헌법4장 2조를 잠재우고 만장일치로 합동을 가결해서 서로 하나를 이룬 것이다. 이것은 정규오 목사와 서기행 목사의 위대한 결단이었다. 그 결단이 한국교회사에 중대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총회는 우리나라 최고의 교단, 아니 세계 최고의 교단이 되었다. 물론 보수신학은 통합되었으나 정치적으로 불균형의 모습을 보여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제는 신학, 정치, 한 영성으로 일체를 이루어 명실상부한 장자교단으로 다시 도약할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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