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교회와 만나 소중한 발자취 남기다

서울 연세대 핀슨관 … 신앙 키우던 기숙사로 사용, 윤동주기념관으로 변신
송기주 네벌식 타자기 … 언더우드 타자기 개조한 가장 오래된 한글 타자기
부산나병원기념비 … 최초 한센인 전문병원 설립 기념, 헌신역사 기억하다

2020년 들어서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의 목록은 계속해서 더욱 풍성하게 채워지고 있다. 특히 근대역사와 한국교회사가 마치 씨줄과 날줄이 만나듯 촘촘히 얽힌 뜻깊은 유산들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지정되며 눈길을 끈다.
문화재청(청장:정재숙)은 2월 6일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센병 전문병원인 ‘부산나병원’의 설립을 기념하기 위해 1930년 제작된 기념비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예고했다. 또한 앞서 지난 연말 연세대학교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인 핀슨관과,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출신 송기주의 네벌식 타자기를 각각 등록문화재 제770호와 77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세 문화유산들이 지닌 역사적·문화적 의의와 함께, 각각의 유산들이 한국교회사와는 어떤 연관을 지녔는지를 하나씩 살펴보며 한국 근대사와 함께 신앙선배들의 자취를 되새겨본다. <편집자 주>

서울 연세대학교 핀슨관

등록문화재 제770호 연세대학교 핀슨관은 이곳이 기숙사로 사용되던 시절 묵었던 시인 윤동주의 기념관으로 최근 변신했다.
등록문화재 제770호 연세대학교 핀슨관은 이곳이 기숙사로 사용되던 시절 묵었던 시인 윤동주의 기념관으로 최근 변신했다.

등록문화재 제770호로 지정된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동 소재 연세대학교 핀슨관은 1922년 대학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시절 건축되어, 스팀관에 이어 학교에서 두 번째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연건평 224.15평의 3층짜리 고딕양식으로 세워진 이 석조건물은 당시 건축비 모금에 공로가 큰 후원자의 이름을 따 핀슨관으로 명명되었다. 1944년까지는 남학생 기숙사로, 이후에는 신학과 종교음악과 등의 수업장소로 사용되었으며 2018년까지는 법인사무처가 입주해있었다.
남학생 기숙사로 사용되던 시절 이 건물에서는 약 50명의 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핀슨관에서 조국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의식을 키우며 성장한 이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민족시인 윤동주이다.

평양 숭실학교에 재학하다 신사참배 거부문제로 학교를 떠난 후, 1938년 서울로 옮겨와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수학한다. 또한 송몽규 강처중 정병욱 등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들이자 동지들과도 깊이 교우한다. ‘뻐꾸기창’이라고 불리는 기숙사 다락방의 창문을 통해 시인은 별들의 명멸을 지켜보며 불멸의 시를 남긴다.

1941년 11월 5일에는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는 구절로 유명한 <별 헤는 밤>이, 같은 달 20일에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인상적인 표현으로 마무리되는 <서시>가 완성된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핀슨관 앞은 ‘시인의 언덕’이라 명명되었고, 1968년에는 시인의 동생 윤일주 교수의 설계로 윤동주시비가 건립되었다. 그리고 2000년 6월 건물 내에 윤동주기념실이 설치됐으며, 올해 1월 20일 핀슨홀 전체가 리모델링을 거쳐 ‘윤동주기념관’으로 개관했다.

문화재청은 이 건물의 문화재 등록 사유에 대해 “윤동주 시인 등과 함께 근현대 속 인물들이 생활했던 기숙사 건물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동시대 건립된 학교 기숙사 건물이 대부분 사라진 상황 속에서 건축형태 및 구조, 생활환경 등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송기주 네벌식 타자기

연희전문학교 출신의 송기주가 언더우드타자기를 개조해 제작한 네벌식 타자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타자기로서 등록문화재 제771호로 지정됐다.

현재까지 발견된 한글 타자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1934년산 ‘송기주 네벌식’ 타자기는 등록문화재 제771호로 지정됐다.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타자기와 함께 휴대용 가방, 사용설명서 등 관련 물품 총 3점을 소장하고 있다.

송기주 또한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출신이다.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호레이스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 선교사의 아버지는 타자기와 인쇄용 잉크 등을 발명해 영국왕실예술원으로부터 메달과 표창을 받은 이력이 있고, 그의 형 존 언더우드는 미국에서 언더우드타자기 회사를 설립해 큰 회사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1885년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에 도착한 그의 짐가방 속에는 타자기가 함께 들어있었고, 자연히 그의 주변 인물들은 당시로서는 첨단기기였던 타자기를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활발한 사역에는 가업이나 마찬가지인 언더우드타자기 회사의 재정적 뒷받침이 큰 힘이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송기주는 미국 휴스턴과 시카고에서 유학하며 지구의를 만들어 번 돈으로 한글타자기 개발에 전념한다. 1927년에 영문타자기를 개조해 만든 두벌식 한글타자기는 안타깝게 현존하지 않는다.

다시 1934년 완성한 한글타자기는 바로 언더우드타자기의 제품을 개조한 것이었다. 모음 위치에 따라 3벌의 자음 글쇠와 1벌의 모음 글쇠로 구성되어 4벌식 타자기로 불려진다. 이 타자기를 송기주의 후손이 한글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최초의 한글타자기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한글 타자기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이전의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한글 기계화 초창기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것이 문화재청에서 밝히는 문화재 등록 사유이다.

부산나병원기념비

우리나라 최초의 한센인 전문병원으로 설립된 부산나병원의 1930년 작 기념비는 올해 2월 등록문화재 지정이 예고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센인 전문병원으로 설립된 부산나병원의 1930년 작 기념비는 올해 2월 등록문화재 지정이 예고됐다.

문화재 등록이 예고된 부산나병원기념비는 현재 부산시 동구 좌천동 소재 일신기독병원 경내에 있다. ‘대영나병자구료회기념비(大英癩病者救療會紀念碑)’라는 글자가 새겨진 이 비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센인 전문병원으로 설립된 부산나병원의 역사와 이 병원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현재 한호기독교선교회가 소유하고 있다.

부산나병원은 미국북장로교 소속 선교사 찰스 어빙(한국명 어을빈) 월터 스미스(한국명 심익순) 리처드 사이드보텀(한국명 사보담) 등이 1909년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운 병원이다. ‘상애원(相愛園)’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병원은 광주나병원 대구나병원 등과 함께 선교사들이 한센인들을 치료하고 구제하기 위해 뻗친 사랑의 손길이었다.

부산선교를 호주장로교선교부가 주도하면서 1910년부터 부산나병원의 관리책임은 제임스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선교사가 맡게 됐다. 호주빅토리아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 산하 청소년선교단의 파송으로 한국을 찾아온 매견시 선교사는 아내 메리 켈리와 함께 부산나병원을 통해 한센인들을 헌신적으로 섬겼다.

1932년에는 한센인들의 미감염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구 범일동에 보육시설을 설치하는가 하면, 나병원 내에서 명신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라는 글귀는 매견시 선교사가 생전에 얼마나 진심을 다해 사역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두 딸 헬렌(한국명 매혜란)과 캐서린(한국명 매혜영)도 훗날 의료선교사로서 부산 일신부인병원을 설립하고 6·25전쟁 직후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보건사업에 큰 공을 세운다.

일제의 압박으로 1936년 전국의 한센인들이 소록도에 강제 수용되고, 1938년 서양 선교사들이 대거 추방되면서 부산나병원과 매견시 가족은 잊혀진 존재가 될 뻔 했다. 하지만 1930년에 화강암을 재료 삼아 1m 13cm 높이로 세워진 부산나병원기념비와, 이 비석에 새겨진 글귀들 덕분에 소중한 기억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

문화재청은 “이 기념비에 대해 우리나라 특수의료 영역인 한센인 치료의 역사와 선교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어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한 나환자촌 등 일반인들과 격리되어 생활하던 한센인 환자들의 존재와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일신기독병원의 맥켄지역사관과 매견시기념비는 부산나병원과 매견시 가족의 스토리를 상세하게 안내한다. 지난해에는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부산대학교박물관, 경상대학교박물관 등에서 ‘호주 매씨 가족의 소풍이야기’라는 테마로 특별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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