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대구에는 유명 사찰들이 많다. 파계사는 서기 804년에 세워졌고, 동화사는 무려 서기 493년에 창건되었다. 역사적으로는 대구가 불교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1900년대 무렵의 근대에 접어들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대구의 골목들에는 기독교 선교 초창기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강렬하게 전해온다.

대구의 사찰들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심에서 버스를 타면 1시간, 승용차를 타면 30~40분이 걸려야 사찰들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대구의 초대교회들은 시내 중심에, 골목들 안에 자리 잡아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며 정겨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대구 관광의 대표적 히트상품이라 할 수 있는 ‘근대로(路)의 골목투어’ 여행은 총 5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유명하고 실제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골목은 제2코스이다. 2코스는 ‘근대문화골목’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거리로는 불과 1.64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구 중심을 걷는 길이고, 길이도 짧아 성인들이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30분 이내로 충분히 주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에 숨은 의미 하나하나를 되짚어보고, 안내자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걷는다면 50m 혹은 100m마다 걷고 멈춰서기를 반복하게 된다.

청라언덕과 3·1만세운동길, 뽕나무골목, 대구 최초의 교회인 구 제일교회 예배당, 교남YMCA 건물 등등 대구의 초대교회 역사들을 이 골목에서 고스란히 만나게 된다. 그래서 대구의 골목길은 교회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길이다. 그 대구의 골목이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대구 근대역사와 나란히 걸어온 교회의 이야기가 근대문화골목 곳곳에 숨어있다.
대구 근대역사와 나란히 걸어온 교회의 이야기가 근대문화골목 곳곳에 숨어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대구의 골목은 초대교회의 골목이 되었다. 오죽하면 ‘북평양 남대구’라는 말이 지금까지 회자되어 오겠는가? 대구를 일컬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2000여 년 전 예수께서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던 것처럼, 대구의 골목에는 이역만리 머나먼 어쩌면 땅 끝과도 같았을 조선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초개처럼 버리고 달려온 선교사들이 있었다. 베어드와 아담스 등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그 외 수많은 이름 없는 전도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이 골목에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일어났고, 그들은 조국을 위해 일제의 압제에 항거했다. 대구의 골목에는 이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적어도 대구의 골목은 불교의 골목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골목이다.

알면 더 많이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필자와 함께 대구의 골목들을 앞으로 16주 동안 함께 걸으며 오목조목 살펴보자.

▒ 오현태 목사는 동대구노회 소속 대구동도교회를 섬기며, <생명의 삶> 집필위원을 지냈습니다. 현재 대구지역 목회자 독서모임 ‘뒷북’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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