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계획이란 단어를 보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특정한 목적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2003년 출간된 이후 IMF에서 갓 벗어나 회복세를 보이던 한국사회와 교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많은 교회가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했고 특별 새벽기도와 같은 다양한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IMF는 한국 사회가 신자본주의 방향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시발점이 됐지만, 한국교회가 번영신학에 집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을 사회에서도 성공하게 인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 <기생충>은 상류층인 박사장네와 하류층인 기택네가 등장하는 블랙코미디 가족영화다. 영화는 비가 내리면 미세먼지 걱정이 없어져서 좋은 부자 가족과 비가 조금만 내려도 반지하에 금세 물난리가 나는 가난한 가족의 모습을 대립적으로 보여주면서 지금 한국사회가 첨예하게 경험하고 있는 빈부격차, 계급 갈등, 인간을 향한 예의 등의 현주소를 비춘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박 사장이 사는 집으로 온갖 술수를 동원해 올라가려는 아들 기우에게 백수 아버지 기택이 던진 대사이자, 동시에 영화의 최고 명대사다. 평소 같으면 범죄로 패가망신하게 할 계획이 한 가족의 삶을 인도한다. 하지만 두 시간이 채 안 돼서 기택 가족은 다시 반지하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잠시 물난리 통에 몸을 피한 대피소에서 아버지 기택은 자조적인 세계관을 드러낸다.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다.’

신자본주의라는 야수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어찌 보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곳이자 계획을 세우는 것이 참 어려운 사회다. 아니 계획을 세울 수는 있지만,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를 관람한 천만 관객은 부자인 박 사장보다는 빈자인 기택의 모습에 더 공감할 것이다. 이런 사회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기택의 대사는 부모세대뿐만 아니라 자녀세대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젊은이들의 수많은 상승 계획은 결국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간극만 확인하고 다시 끝없는 하강 곡선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지극히 한국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국교회와 계획이라는 단어로 돌아와 보자. 십수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층이 되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각인된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계획’은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 맞춰 달라지고 있을까, 아니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를 성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일까. 대형교회에 대한 자성적 목소리도 들리고 고지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인도하심을 기택네 가족 보다는 박 사장네 가족과 더 결부시키고 있다. 아직도 한국교회 내에서 울려 퍼지는 간증과 확대 재생산되는 이야기의 핵심에는 개인적인 성공과 풍요가 자리하고 있다.

사랑이 충만한 하나님이 인간을 행복한 삶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에 의견을 달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인간의 성공과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는 교회의 응답이 필요한 문제이다. 영화 <기생충>이 ‘명징하게 직조’해낸 빈부의 격차와 분배 정의실현의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공감이라는 차원에서 하나 되게 했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아카데미는 역사상 가장 과감한 정치적 선택을 했다. 한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이끈 일련의 과정이 한국교회에 어떤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성공과 풍요가 아니라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충분히 신뢰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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